[여행 리뷰] 서귀포 건축투어_② 안도 타다오, 미니멀리즘·자연과의 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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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타임스=라라 리뷰어]
일본의 건축가인 안도 타다오는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카상(1995년)을 수상한 건축 거장이다. 1987년에는 마이니치 예술상을, 1992년에는 칼스버그 건축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그는 건축에 대해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고교 시절엔 복서로 활동하기도 했고, 청년 시절엔 건축 현장에서 일했다. 그러다 우연히 중고서점에서 접한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건축 카탈로그를 보고는 건축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한다. 물론 ‘건축이 재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 건 훨씬 전부터였다.
그의 나이 열 네 살, 가족이 살던 집을 증축하기 위해 방문했던 옆집 목수 아저씨가 식사도 거른 채 신나서 아이디어를 내는 모습을 보고는 너무 즐거워 보여 건축에 관심을 갖게 됐다 한다. 르 코르뷔지에는 근대건축의 아버지라 불리는 건축 거장이다. 안도 타다오가 르 코르뷔지에의 설계 도면을 직접 드로잉하며 모두 외우다시피 한 후 1962년부터 1969년까지 세계 각국을 여행하며 독학으로 건축을 공부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안도 타다오 건축의 특징은 ‘자연과의 조화’, ‘물’, 그리고 ‘빛’으로 요약된다. 그래서 그의 건축엔 자연광과 물이 주된 요소로 등장한다. 그런데 안도 타다오의 트레이드 마크는 노출 콘크리트다. 언뜻 ‘자연과의 조화’라는 컨셉과 잘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건축은 자연과 잘 어우러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콘크리트만큼 잘 어우러지는 재료는 없습니다. 콘크리트는 누구든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입니다. 그래서 그 재료로 아무나 할 수 없는 건축을 하고 싶었습니다. 콘크리트는 공법에 따라 잠재된 가능성이 무궁무진합니다.
먼저 거푸집을 만들고 그 속에 시멘트를 부어넣으면 어떤 형태이든 자유자재로, 더구나 단번에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매력을 가졌죠. 즉, 콘크리트는 건축가의 생각을 표정으로 드러낼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가진 재료입니다.”_디자인프레스 안도 타다오 인터뷰(2023. 4. 25) 중에서.
제주도엔 노출 콘크리트로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만들어낸 안도 타다오의 멋진 작품이 몇 곳 있다. 가장 대표적인 곳은 아마도 그의 건축 철학과 한국적 정서가 만난 본태박물관이 아닐까 싶다. 그의 또 다른 작품은 섭지코지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유민아르누보뮤지엄과 글라스하우스다. 이 중 본태박물관은 유동룡(이타미준)의 여러 작품이 함께 있는 제주 서부 중산간에 있으니 이타미준 건축 여행을 할 때 함께 방문해도 괜찮을 것 같다.
① 본태박물관, ‘다음 세대에 전할 문화 본연의 것들을 담는 공간’
“本態, 본래의 모습”, 이름 그대로 본태박물관은 ‘오랜 세월의 흔적에 가려져 있던 문화 본연의 모습을 탐색하는 아름다운 문화 공간’을 추구하는 박물관이다. 40년 넘게 한국의 전통 수공예품을 누구보다 아끼며 수집해왔다는 설립자는 우리나라 전통 수공예품의 아름다움을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 박물관을 설립했다 한다. 안도 타다오는 이런 설립자의 취지를 건물에 담아내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다.
‘다음 세대에 전해야 하는 건 무엇인가?’라는 취지에 답하고자 안도 타다오는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노출 콘크리트에 빛과 물을 건축 요소로 끌어들였다. 건물의 내부뿐 아니라 넓은 연못과 대지의 외적인 요소들도 하나의 공간으로 포착했다.
그래서 본태박물관은 사실 전시품보다 건물 자체가 더 매력적인 공간이다. 실제로 본태박물관은 건축가가 의도한 대로 미로 같은 공간을 지나 다음 공간들을 만나게 된다.
가장 먼저 만나는 공간은 제3관이다. 일본의 조각가이자 설치미술가인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Pumkin)’이 전시된 곳이다. 제3관을 지나면 전통상례품들이 전시된 제4관과 기획전시관인 제5관으로 이어진다. 본태박물관을 방문했을 때 제5관은 기획전시가 준비 중이어서 5관을 지나치고 보니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 산방산과 제주 서쪽 앞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옥상에서 내려와 다시 동선을 따라가면 현대미술이 전시된 제2관으로 향한다. 이곳에선 안도 타다오에 대한 해설과 더불어 백남준의 작품 등 현대미술을 만난다. 제2관의 특별한 장소가 있다면 일본식 다다미와 방석이 놓인, 그저 관람하는 게 아니라 방석에 앉아 잠시 명상을 해야 할 것 같은 ‘명상의 방’이다.
지금까지 지나온 동선이 꽤나 구불구불하다. 미로처럼 복잡하고 먼 길을 돌아갔다가, 다시 나와 보니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도 한다. ‘명상의 방’을 지나면 좁은 복도로 이어진다. 복도 오른편, 고풍스런 한옥 스타일의 낮은 담장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이 아마도 본태박물관의 가장 멋진 공간이 아닐까 싶다.
좁은 통로, 산들거리는 바람에 그저 몸을 내맡긴 채 흘러내리는 물, 그리고 고즈넉한 풍경. 청명하게 흐르는 물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왔던 길로도, 앞으로 가야 할 길로도, 그 어느 곳으로도 가고 싶지 않은 유혹에 빠지고 만다. 한참을 그렇게 수경폭포에서 머물러 있게 된다.
건축 전문가가 아니어도 이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뭔가 다르다는 걸 직감하게 된다. 그다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노출 콘크리트와 한국의 전통적인 낮은 담장, 한쪽 벽을 따라 흐르는 물, 그리고 다시 ‘수경폭포’. 폭포와 담장 사이 공간으로는 제주의 푸른 자연이 멀리서 손짓한다. 높낮이의 차이가 있는 복도지만 그 안에서 높낮이는 곧바로 체감되지 않는다.
본태박물관은 현재 1관부터 4관까지는 개관 당시부터 동일한 주제의 상설 전시가 열리고 있고, 5관에선 지난해 4월부터 ‘空間: 삶과 불교미술이 만나다’를 주제로 불교 회화와 조각 등 총 342점이 전시되고 있다.
<본태박물관>
- 운영시간 : 10:00~18:00 (연중 무휴)
- 관람 요금 : 성인 30,000원, 청소년 20,000원
- 위치 :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산록남로 762번지 69
② 유민아르누보뮤지엄, 건축을 자연에 덧입히다!
제주 동쪽 섭지코지는 휘닉스아일랜드가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2003년 히트 드라마였던 ‘올인’ 촬영지로 유명세를 떨친 곳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유명세를 안도 타다오의 건축물이 대신하고 있다. 섭지코지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선녀바위 등대에서 살짝 북쪽, 성산일출봉을 향해 안도 타다오가 디자인한 두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2010년 개관한 유민아르누보뮤지엄은 미니멀리즘과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하는 안도 타다오의 건축 철학을 잘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그의 시그니처인 노출 콘크리트는 다소 차갑게 느껴질 수도 있는 소재지만, 공간 곳곳을 지나며 만나는 아기자기한 장치들이 비현실적인 그림을 만들어낸다. 가로로 넓고 세로는 좁은 창밖으로 펼쳐지는 성산일출봉은 와이드 화폭에 담긴 한 폭의 그림 같다. 뿐만 아니라 이곳은 자연광의 멋도 제대로 살아있는 공간이다. 군더더기 없이 심플한 건물이 시시각각 자연광의 움직임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스스로를 표현한다.
노출 콘크리트를 주 소재로 사용했지만 제주 고유의 질감도 놓치지 않았다. 그래서 미술관에 들어서면 차가운 콘크리트와 제주의 돌담이 마주한 좁은 복도를 지나야 한다. 막혀있을 것 같은 복도 끝 정면에도 높은 돌담이 자리하고 있다. 그렇게 복도를 지나면 원래 있던 공간을 그대로 살린 야외 정원이 펼쳐진다.
유민아르누보뮤지엄에선 현재 에밀 갈레와 돔 형제, 외젠 미쉘, 르네 리리크 등 주로 자연주의적인 소재와 영감을 표현한 프랑스 낭시 지역 아르누보 주요 작가들의 유리공예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아르누보는 1894년부터 약 20여 년간 유럽 전역에서 일어난 공예 디자인 운동으로, 중앙일보 선대회장인 고(故) 유민 홍진기(1917~1986) 선생이 낭시파 유리공예 작품들을 오랜 시간 정성들여 수집해온 것이란다.
<유민아르누보뮤지엄>
- 운영시간 : 09:00~18:00 (매월 첫째 주 화요일 휴관/국경일·명절 연휴 정상 운영)
- 야간 개장 18:00~23:00 (뮤지엄 야외 공간 산책-삼다의 정원, 벽천 폭포, 하늘길/전시실 내부는 관람 불가)
- 관람 요금 : 성인 15,000원, 청소년 12,000원
- 위치 :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섭지코지로 107
③ 글라스하우스, 모던하면서도 절제된 조형미
글라스하우스는 이름 그대로 건물 전체가 거의 유리로 구성된 건물이다. 유민아르누보뮤지엄이 지하와 지상층 두 공간으로 구성돼 지면 위에서 보면 거의 두드러져 보이지 않는 것과 달리 글라스하우스는 섭지코지에 올라서자마자 한눈에 바로 들어온다.
노출 콘크리트 구조물 위에 V자 형태의 사각형 유리 구조물이 배치돼 있어 모던하면서도 절제된 조형미가 느껴진다. 건물의 입구는 콘크리트 스크린 벽에 가려져 있어 ‘어? 어디로 들어가지?’ 하며 잠시 방문객을 당황하게 만든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전 외부의 시선을 차단하고 독특한 공간 경험을 선사하기 위한 디자인이라 한다. 하지만 이처럼 차단됐던 시선을 거두고 나면 통창을 통해 거침없는 뷰가 펼쳐진다.
사실 리뷰어 라라는 건축에는 거의 문외한이나 다름없지만 개인적으로는 글라스하우스에 그리 높은 점수를 주고 싶지 않다. 유민아르누보뮤지엄이 주변의 지형을 이용해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된 것과 달리, 글라스하우스는 멀리서부터 건축물만 한 눈에 들어오기에 이 건물을 이용하는 이들에게는 기분 좋은 공간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외부에서 건물을 바라볼 때는 주변의 자연에 거슬린다는 느낌도 적지 않게 들기 때문이다.
글라스하우스는 1층은 카페, 2층은 레스토랑으로 운영 중이다.
<글라스하우스/민트 가든 카페>
- 글라스하우스 1층은 카페, 2층은 레스토랑으로 운영 중
- 위치 : 서귀포시 성산읍 섭지코지로 107
④ 번외편, 중문관광단지 ‘부영호텔’이 세계적 건축 거장인 리카르도 레고레타의 작품이라고?
중문관광단지 제주국제컨벤션센터 옆에는 세계적인 건축가인 리카르도 레고레타(1913~2011)의 작품으로 알려진 건축물이 하나 자리하고 있다. 리카르도 레고레타는 1931년 멕시코에서 태어난 건축가로, 멕시코 특유의 감성을 시각적으로 건물에 담아 인간과 환경을 생각하는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유명한 세계적 건축가다.
중문의 리카르도 레고레타 작품은 부영호텔&리조트다. 그런데 막상 그곳에 가면 ‘이게 세계적인 건축 거장의 작품이라고?’ 하는 생각이 먼저 스친다. 바로 옆에 위치한 제주국제컨벤션센터와도, 호텔 앞 바다와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질감이 많이 느껴지는 건축물인 탓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부영호텔은 리카르도 레고레타의 설계대로 지어진 게 아니란다. 호텔 부지는 56만6324㎡(약 18만평), 건물 규모는 지하 2층, 지상 8층에 달하는데, 건축가의 설계를 토대로 건축 승인을 받아놓고는 설계 일부, 건축 마감재, 외관 컬러 등 적지 않은 부분을 바꿔버렸다 한다. 부영호텔은 리카르도 레고레타의 사후에 완공됐지만 원래의 설계대로 건축했다면 중문관광단지에도 오래도록 사랑받을 랜드마크가 하나 생겼을 텐데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lala_dimanc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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