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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리뷰] '1만 8천 신들의 섬' 제주, 바람의 신을 맞고 보낸다 '칠머리당영등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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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타임스=라라 리뷰어]


제주도는 흔히 ‘1만 8천 신들의 섬’이라 불린다.

‘1만 8천 신들이라니? 그렇다면 그리스신화 같은 신화대작이라도 한 편쯤 있어야 하지 않나?’ 

싶은데, 제주로 이주해오고 나서도 ‘대체 1만 8천 신들이 어디 있다는 거지?’ 하는 궁금증이 한동안 가시지 않았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제주의 신’에 별 관심이 없었기에 몰랐던 거다.


칠머리당영등굿은 바람의 여신인 ‘영등’이 제주에 들어오는 것을 환영하는 '영등환영제'와 떠나보내는 '영등송별제'로 나눠 두 차례 치러진다.


제주도는 비, 바람, 태풍이 늘 많은, 척박한 땅이다. 태생이 화산섬이기에 자연 풍광은 아름답지만, 섬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제주 사람들이 신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제주도의 마을에는 거의 대부분 마을신을 모시는 본향당이 있고, 바닷가에도 어부들과 해녀들이 바다에 나갈 때 안녕을 비는 신당들이 있다. 물론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겐 잘 보이지 않는다. ㅎㅎ 각 마을의 본향당은 하나의 신만 모시는 경우는 드물고 네다섯 신들을 함께 모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게 준비된 신당뿐 아니라 집안 곳곳에도 신들이 좌정하고 있으니 제주도민들은 ‘신과 함께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주도 사람들을 미신에 빠져 사는 이들로 오해하지는 말기 바란다.

제주의 무속은 육지와 달리 척박한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대야 했던, 육지와는 전혀 다른 섬만의 문화였을 테니 말이다.

 

제주만의 독특한 문화 '신구간'

이처럼 도처에 신들이 좌정해 있으니 제주의 문화는 육지와 다를 수밖에 없다.

 

가장 두드러지는 것 중 하나가 ‘신구간’이 아닐까 싶다. ‘신구간(新舊間)’은 ‘묵은 해’와 ‘새 해’를 의미하는데, 지상에 내려와 인간사를 다뤘던 신들이 한 해의 임무를 마치고 하늘로 돌아간 후 다시 새로운 신관(新官)이 내려오기까지 제주섬에 신들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기간을 말한다. 한마디로 신들의 바통 터치 기간이다. 정확히는 ‘대한 후 4일부터 입춘 전 3일’까지 총 8일간이다. 이 기간에 제주도민들은 그동안 신들이 두려워서 하지 못했던 많은 일들을 하느라 분주하다. 이사, 집수리 같은 것들이다.

 

제주로 이주해온 지 10년쯤 돼 가는데 처음 이주해왔을 때만 해도 이 신구간 문화가 상당히 작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전자제품 매장에선 매년 '신구간맞이 세일'을 대대적으로 진행한다.


신구간이 지나면 곧바로 입춘이다. 입춘맞이는 탐라입춘굿으로 시작된다. 탐라입춘굿은 한 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농경의례로, 심방(무당)이 주도하는 의식이다.

입춘 문화는 육지에도 있지만 탐라입춘굿 이후 치러지는 ‘칠머리당영등굿’은 제주에만 있는 문화다.

 

칠머리당영등굿, 영등환영제&영등송별제

칠머리당영등굿은 바람의 여신인 ‘영등’이 제주에 들어오는 것을 환영하는 '영등환영제'와 떠나보내는 '영등송별제'로 나눠 두 차례 치러진다. 이렇게 영등환영제와 영등송별제로 2회에 걸쳐 굿을 하는 사례는 칠머리당영등굿이 유일하다 한다. 

 

'바람의 여신' 영등신은 매년 음력 2월 1일 서풍을 타고 제주도로 들어와 2주 정도 제주에 머문다. 이 기간 동안 제주 바다와 땅에 씨앗을 뿌려주고, 14일 후인 음력 2월 15일 북풍을 타고 제주 섬을 떠난다. 제주도에선 ‘영등할망’이라 부르는데, 여기서 ‘할망’은 육지의 ‘할머니’ 의미가 아니라 ‘여신’을 의미한다. 영등신이 올 때는 딸이나 며느리를 데리고 오는데, '딸을 데리고 오면 날씨가 맑고 산들바람이 불고, 며느리를 데리고 오면 강한 바람이 몰아친다'는 얘기가 있다. 올해는 2월 28일 날씨가 좋지 않았었는데, 아마도 며느리가 함께 온 모양이다.

 

칠머리당영등굿은 바람의 여신인 영등할망을 맞고 떠나보내는 의례지만, 이때 영등할망뿐 아니라 용왕과 산신에게도 모두 제사를 지낸다.

 

칠머리당영등굿은 바람의 여신인 영등할망을 맞고 떠나보내는 의례지만, 이때 영등할망뿐 아니라 용왕과 산신에게도 모두 제사를 지낸다. 제주도 특유의 해녀신앙과 민속신앙이 담긴 우리나라 유일의 해녀굿이다. 그래서 2009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으로도 등재되었다. 


영등환영제와 영등송별제로 1년에 두 번만 치러지니 실제로 볼 기회도 1년에 딱 두 번뿐이다.

물론 칠머리당영등굿전수관이나 다른 문화행사 때도 시연을 하지만, 제대로 치러지는 칠머리당영등굿은 사라봉의 칠머리당에서 봐야 한다.

 

올해 영등환영제는 지난 2월 28일 제주시 수협공판장에서 이미 진행되었고, 영등신을 떠나보내는 영등송별제는 오는 13일(목) 제주시 사라봉 칠머리당에서 행해질 예정이다. 비가 올 경우 칠머리당영등굿전수관으로 자리를 옮겨 치러지는데 현재 일기예보 상으로는 비가 올 것 같지 않다.

 

칠머리당영등굿이 열리는 사라봉의 칠머리당.

 

사라봉에 위치한 칠머리당에선 바람의 신인 영등신만 모시는 게 아니다. 부부신인 ‘도원수감찰지방관(지역민의 요구 담당)’과 ‘요왕해신부인’(어부와 해녀의 생계 담당)‘, 남당하르방, 남당할망, 영등대왕, 해신선왕 등도 모두 칠머리당에서 모시는 신들이다. 

 

사라봉에서 보이는 풍경

 

영등환영제와 영등송별제는 의례에 살짝 차이가 있다.

영등환영제는 모시는 신들과 더불어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을 거명하며 행운을 비는 초감제로 시작해 풍어제와 조상신을 즐겁게 하는 연희인 석살림굿으로 마무리된다.

 

이와 달리 2주 뒤 열리는 영등송별제는 영등환영제와 마찬가지로 초감제로 시작하지만, 여기에는 마을의 사당으로 들어오는 의례인 본향듦도 포함되어 있다. '본향듦'은 마을의 수호신인 도원수감찰지방관과 요왕해신부인에게 마을의 안녕을 축원하는 의례다. 

영등송별제의 순서는 초감제-공연-요왕맞이-씨드림·씨점-액맥이-영감놀이-도진의 순으로 진행된다.


1. 초감제 : 1만 8천 신을 굿하는 장소로 청하는 제차로, '삼석울림, 궷문열림'부터 신을 청하고, 신역의 문을 열고, 제장을 정화하고, 신을 차례로 모시고, 신과 함께 노는 7가지 순서로 진행된다. 굿을 하는 장소와 날짜를 말하고, 굿을 하게 된 연유를 고한 후 1만 8천 신이 오시는 문을 열고, 신을 청해 모신 후 제각기 정해진 자리에 앉히는 과정이다. 많은 신들을 청해야 해서 그런지 초감제는 오전 내내 이어진다.

 

삼석울림 : 하늘 옥황 삼천전제석궁(三天殿帝釋宮)에 굿의 시작을 알리기 위하여 악기소리를 울리는 제차

궷문열림 : 본향당신이 거처하는 곳으로 관념되는 의 문을 여는 제차

 

영등송별제는 모시는 신들과 더불어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을 거명하며 행운을 비는 초감제로 시작한다.

 

초감제가 끝나고 나면 곧바로 점심시간이다.

점심식사는 마을회에서 준비한 고기국수를 대접하는데, 영등송별제에 참여한 누구나 맛볼 수 있다(무료). 


마을회에서 준비한 고기국수

 

2. 공연 : 신에게 제물을 권하는 제차로, 4개의 부속 제차로 구성돼 있다. 4개의 제차는 제청에 좌정한 신들에게 자손들이 준비한 제물을 대접하는 ‘추물공연’, 초감제에 청한 신들에게 잔을 권하는 ‘금베리잔’, 신에게 바치는 시루떡을 빙글빙글 돌리고 던져 주고받으며 소미들이 춤을 추는 ‘나까시림 놀림’, 일찍 부모님을 잃고 사고무친한 지장아가씨가 기구한 운명을 딛고 삶을 헤쳐 나가는 이야기를 북, 장구 반주에 맞추어 노래하는 ‘지장본풀이’로 구성되어 있다.

소미(小巫) : 보조심방


영등송별제

 

3. 요왕맞이 : 바다를 차지한 용왕신을 제청에 맞아들여 기원하는 제차로, 요왕상과 선왕상을 제청 밖으로 옮기고 제청 중앙에 길이 1m쯤 되는 대나무 가지 16개를 양쪽으로 8개씩 꽂아 용왕신이 오는 요왕질(길)을 만드는 의례다. 


4. 씨드림·씨점 : 씨드림은 바다에 씨를 뿌리는 행위를 함으로써 어획물의 풍요를 기원하는 상징적인 의례인데, 소미 둘이 씨앗을 담은 ‘씨멩텡이’를 들고 나와 춤을 추며 높이 던졌다가 받기를 수차례 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씨점은 좁쌀을 돗자리에 뿌려 그 모이고 흩어진 모양을 보아 어채물의 풍요를 점치는 과정이다.


영등송별제

 

5. 액맥이 : 마을 전체의 액운을 막는 제차로, 한 해 동안 마을에 나쁜 일이 생기지 않도록 기원한다. 액맥이는 어느 굿에서나 굿의 막바지에 반드시 포함되는 제차라 한다.


6. 영감놀이 : 명칭 그대로 마치 연극 같은 순서다. 서울 먹자골 허정승 아들 일곱 형제 영감(도깨비)을 안으로 청해 돼지고기, 술, 떡 등으로 대접하고, 서우제소리를 흥겹게 부르며 단골과 함께 어울려 춤을 추며 사람들에게 궂은 일이 없도록 기원하는 순서다.


연극같은 순서 '영감놀이' 속 영감들. 사진은 들불축제 체화장의 영감들.

 

'XR공연: 도채비' 속의 도깨비(영감)들 (사진: (주)인스피어)

 

7. 배방선 : 짚으로 만든 작은 모형 배에 제물을 가득 실어 실제 바다에 띄워 보내는 순서. 배가 순조롭게 떠가면 한 해가 좋다고 여긴다. 배방선은 칠머리당에서 굿이 계속 진행되는 동안 일부만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띄워 보내기 때문에 참관객이 직접 보기는 어렵다.


배방선 : 짚으로 만든 작은 모형 배에 제물을 가득 실어 실제 바다에 띄워 보낸다.

 

8. 도진 : 마지막 순서로 초감제 때 청했던 신들을 모두 제자리로 돌려보내는 의식이다.


이렇게 순서가 나눠져 있긴 하지만 무속신앙에 문외한인 사람은 직접 참관을 하면서도 저 순서를 다 알지는 못한다. 사실, 심방이 하는 말도 귀를 쫑긋하지 않으면 알아듣기 어렵고, 그마저도 제주어에 익숙해진 다음에야 아주 조금씩 들리기 시작했다.


오후 굿이 진행될 때는 '메밀돌레떡'이란 걸 함께 나누는데, 아무런 간을 하지 않은 메밀가루로 만든 떡이다. 나중에 무속을 연구하는 분께 물으니 제주도에서는 제상에 건조 옥돔구이를 함께 올리는데, 굿이 끝난 후 이 건조 옥돔구이와 메일돌레떡을 함께 먹는다 한다. 그래야 간이 적당해서일 거라는 설명이다.


제주의 굿에서 늘 볼 수 있는 메밀돌레떡.

 

<영등송별제 순서>

1. 초감제 : 1만 8천 신을 굿하는 장소로 청하는 제차.

2. 공연 : 신에게 제물을 권하는 것

3. 요왕맞이 : 용왕과 영등신을 청하여 대접하는 것

4. 씨드림·씨점 : 바다에 씨를 뿌려 훙흉을 점치는 것

5. 액맥이 : 액운을 막는 것

6. 영감놀이 : 선왕을 대접해 돌려보내는 것

7. 배방선 : 제물을 배에 띄워 보내는 것

8. 도진 : 신을 모두 본래의 자리로 돌려보내는 것


칠머리당영등굿은 제주도에서 가장 큰 규모의 굿으로 치러지지만 제주도 곳곳의 마을에는 여전히 본향당굿과 해녀굿을 이어오고 있는 곳이 적지 않다. 탐라입춘굿이 끝나고 난 직후부터 4월까지 적지 않은 마을에서 해녀굿이 진행된다. 칠머리당영등굿과 달리 규모는 작지만 칠머리당영등굿을 놓쳤다면 해녀굿을 참관해보는 것도 좋은 여행 경험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매년 해녀굿 일정은 제주도청 누리집에 올라온다.


<영등송별제>

- 일시 : 2025년 3월 13일 9시부터 일몰 전까지

- 위치 : 제주시 사라봉동길 58 (칠머리당영등굿전수관)

- 칠머리당영등굿전수관 : https://chilmeoridang.or.kr/introduction4


<lala_dimanc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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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1

김우선I기자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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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선I기자
2025-03-12 10:35
역시 라라님 리뷰는 가히 넘사벽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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