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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이벤트


[역사 리뷰] 아름다움 속에 감춰진 아픔, ‘제주 4.3’의 흔적을 좇아➁ 봄꽃의 성지 가시리마을

눈부시게 화려한 마을, 그래서 더 처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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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타임스= 김지향 리뷰어]

4월 초만 되면 벚꽃과 유채꽃이 아름다운 드라이브길 ‘녹산로’. 녹산로는 새 생명이 싹을 틔우는 봄, 제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중 하나로 꼽힌다. 길도 아름답지만 매년 4월 초엔 녹산로 옆 약 9만4천㎡ 규모(약 3만평)에 조성된 유채꽃광장에서 서귀포유채꽃축제도 열린다.

 

 

하지만 이처럼 아름다운 마을에도 여전히 아물지 않은 상처가 있다.

눈부시게 화려하지만, 그래서 더 처연함이 느껴지는 마을, ‘제주4•3’의 아픈 기억은 가시리에서도 현재진행형이다.

 

* * *

 

가시리 마을에선 1948년 초토화되던 마을을 두 눈으로 지켜본 어르신이 ‘제주4•3’ 당시의 이야기를 전해주신다. ‘가시리마을 4•3길 센터’를 방문하는 이들에게 해설을 해주시는 오태경 어르신이다. 어르신의 나이는 올해 93세. 하지만 93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당시를 생생히, 그리고 정확히 기억한다.

 

 

“제주4•3으로 인해 가장 많은 피해를 본 마을은 제주시의 북촌리와 서귀포의 가시리에요. 북촌리는 한날 한시에 400여명이 한꺼번에 희생돼 참혹함이 이를 데 없었는데, 우리 마을에서도 500여명이 희생됐어요.”

 

500여명은 당시 가시리 마을 인구의 1/3에 달하는 숫자다.

 

가시리마을 4•3길센터에서 해설을 해주시는 올해 93세의 오태경 어르신

 

 

우리 마을은 ‘제주4•3’ 당시 계엄령이 선포되기 며칠 전부터 초토화가 됐어요. 주한미군사고문단장 로버츠(William L Roberts) 준장의 추천으로 제주로 내려온 당시 제9연대장 송요찬 소령이 1948년 10월 17일 ‘해안선으로부터 5km 이상 중산간 지대를 통행하는 자는 모두 폭도배로 간주한다’는 포고문을 발표하면서 곧바로 소개령이 떨어졌는데, 우리 마을은 1948년 11월 11일에 불탄 거에요. 초토화 작전을 하려고 한집 건너 하나씩 불을 질러서 며칠 만에 마을이 완전히 폐허가 돼버린 거죠. 군경이 마을에 불을 지른 첫날에만 39명이 죽었어요. 노인, 어린아이 등 미처 피신하지 못한 사람들이었죠. 계엄령 선포가 11월 17일이니까 우리 마을은 이미 6일 전에 초토화가 된 거에요.”

 

가시리 마을 비극의 시작이다.

 

 

 

 

 

‘해안선으로부터 5km 이상 중산간 지대를 통행하는 자는 모두 죽인다’는 얘기가 떠돌자 가시리 마을 사람들은 부랴부랴 산으로 피신했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산에서 내려오면 살려준다’는 얘기가 들렸다. 사람들은 그 말을 그대로 믿었다. 산으로 피신했던 사람들은 가시리를 비롯해 인근 마을인 토산리, 신흥리, 성산리 등으로 흩어져서 내려왔다.

 

가시리마을 4•3길센터

 

“산에 갔던 사람들이 내려오니까 12월 22일에 모두 모이라더군요. 그런데 사람들을 모아놓고는 가족 중에 한 명이라도 사라진 집을 모두 도피자 가족, 폭도 가족으로 몰아서 추려내는 거에요. 그때 모인 사람이 모두 160여명인데 76명이 폭도 가족으로 추려졌어요. 이 사람들을 모인 곳에서 약 2.5km 떨어진 표선초등학교로 끌고 가서 모두 총살을 했지요. 우리 말고 산에서 내려와 포로로 잡힌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 사람들은 함덕으로 보냈다고 해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주정공장하고 농업고등학교에 수감됐던 거더군요. 수감자들 중 가시리 사람은 82명이 형을 받았는데 20명에게 사형이 언도됐어요. 그리고 그날로 바로 지금의 제주국제공항 자리로 끌고 가서 죽여버렸어요. 나중에 유해 발굴 때 보니 가시리 사람 유해가 3구가 나왔죠. 다른 62명은 육지 형무소로 이관됐다고 들었는데, 이들 중에는 나랑 동갑내기 친구들도 5명이나 있어요.”

 

오태경 어르신의 기억은 숫자 하나까지도 또렷했다.

 

 

가시리마을 4•3길은 자연사랑갤러리 옆 마을올레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그에게는 지금도 잊기 어려운, 토산리에서 겪은 더 잔인한 기억도 있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해요. 당시 산으로 피신했다가 살려준다니까 내려온 사람들이 있었는데 12월 15일에 모두 당동산 앞으로 모이라고 하더군요. 토산리하고 가시리 사람들을 한데 모았는데, 동쪽에 가시리, 서쪽에 토산리 사람들로 분류하고는 토산리 사람 중에서 18세 이상 40세 이하를 앞으로 나오라고 하는 거에요. 청년들이 나오니까 도망치지 못하게 한쪽 팔을 줄줄이 묶고 처녀들도 무차별적으로 호명해서 나오라고 했어요. 그리고는 표선초등학교로 데려가서 2~3일 뒤인 18일, 19일 이틀 동안 거기서 모두 총살했어요.

 

당시 토산리 창고 옆에서도 살상이 있었는데, 작은 밭으로 마을 사람들을 모이라고 하더니 잡아온 사람들을 모아놓고 한꺼번에 총질을 하는 거에요. 우리한테 그걸 직접 보게 한 거죠. 너무 끔찍해서 차마 입도 떼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고만 있는데 총질한 다음에 우리한테 박수를 치라고 하는 거에요. 어떻게 그렇게 잔인하고 악랄할 수가 있어요?”

 

바로 눈앞에서 내 이웃과 가족들이 죽어갔지만 사람들은 말 한 마디 꺼내지 못한 채 시키는 대로 박수를 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 * *

 

어르신은 ‘가시리마을 4•3길 센터’에서 당시의 경험을 들려주시고는 직접 가시리마을 43길 안내에 나섰다. 가시리사무소 뒤편 오른쪽으로 나가 ‘자연사랑갤러리’ 옆으로 향하는 작은 올레길이 가시리마을 4•3길의 시작이다. 붉은색과 흰색의 상징리본이 있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4•3길 상징 리본의 붉은 색은 ‘정열, 희생, 진실’을, 흰색은 ‘순백, 결백, 평화’를 의미한다고 한다.

 

가시리마을 4•3길 코스

 

‘가시리마을 4•3길’은 총 7.4km 정도로 고야동산, 한씨방묘, 구석물당, 면암 최익현 유적비, 마두릿동산, 잃어버린 마을 ‘종서물’과 ‘새가름마을’, 가시천, 갑선이오름, 달랭이모루를 지난다. 이중 한씨방묘, 구석물당, 면암 최익현 유적비는 4•3과의 연관성은 없지만 가시리마을의 소중한 문화 유적이다.

 

고야동산과 마두릿동산은 4•3 당시 마을 청년들과 주민들이 보초를 섰던 곳이다.

 

고야동산에 세워진 깃대를 내리는 식으로 신호를 보내면 마두릿동산에서 신호를 보고 마을 주민에게 다시 신호를 보내는 식이었단다. 4•3 당시에는 마두릿동산에서 고야동산이 보였다는데 지금은 나무들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두 곳 모두 ‘동산’이란 명칭이 붙었지만 지금은 도로가 나서 동산이란 느낌이 들지 않는다.

 

마두릿동산을 지나면 4•3으로 인해 전소돼 지금은 잃어버린 마을이 된 ‘종서물’과 ‘새가름마을’을 만난다. 종서물에는 4•3 당시 10여호가, 새가름마을에는 20여호 100여명의 주민들이 살았었다 한다.

 

잃어버린 마을

 

새가름을 지나 만나는 가시천은 가시리에서 발원해 세화리로 빠져나가는 7.4km의 하천이다. 제주4•3 당시 군경을 피해 숨어있던 엄마와 아기가 이곳에서 희생당했다. 아이가 너무 어려 숨어 있는 와중에 울음을 터뜨려 발각되는 바람에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했다 한다.

 

가시리에서 발원해 세화리로 빠져나가는 7.4km의 하천인 가시천.

 

마지막 코스인 달래이모루는 1948년 11월 15일 가시리 주민 12명이 희생된 곳이다.

 

달래이모루에 닿기 전에 만나는 갑선이오름은 달래이모루까지 돌아보고 나올 때 들려봐도 좋을 것 같다. 인적이 드물어 오르기도 쉽지 않고 밀림이 빽빽하다고 한다.

 

어르신과 함께 돌아본 가시리마을 4•3길에선 먹먹함이 느껴진다.

녹산로의 벚꽃과 유채꽃을 즐기려 가시리를 찾는다면 가시리마을 43길 센터에도 들러 잠시 어르신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가시리마을 4•3길

- 가시리마을 4•3길 센터 위치 :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로 565번길 20 (주차는 가시리사무소에)

- 총 거리 : 7.4km (2시간 30분 소요)

- 다른 지역의 제주 4•3길 찾아보기 : https://jeju43peace.or.kr/kor/sub01_06_01_01.do (제주4•3평화재단)

- 제주 4•3길 문화해설사 예약 및 문의 : 제주특별자치도 43지원과 (064-710-8454)

 

 

 

<lala_dimanch@hanmail.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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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1

TepiphanyI리뷰어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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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piphanyI리뷰어
2023-04-09 18:59
마음 아픈 역사입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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