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리뷰] 누구나 무료 관람할 수 있는 ‘국립고궁박물관’ 가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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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첫 폭염주의보가 내린 날. 사무실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산책을 하기엔 너무 더워 사무실 근처 경복궁역 지하보도를 걸어보기로 했다. 경복궁역 지하보도는 꽤나 길게 만들어져 있다. 가다보니 경복궁역 제일 끝 5번 출구가 경복궁으로 바로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있다. 경복궁과 함께 표지판에 적혀 있는 건 국립고궁박물관이다.
국립고궁박물관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한 번도 가보진 못했다. 발걸음을 고궁박물관으로 옮겼다. 입장료 일이천원 정도면 이 더위를 피할 금액으로 낼 요량이었다. 그런데 입구에 적혀 있는 건 ‘무료’ 관람이었다. 아, 무료였구나. 국립박물관이라서 무료로 운영하나보다. 서울에 여기 말고도 무료로 볼 수 있는 곳이 몇 군데가 있긴 하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나 전쟁기념관, 이촌역 국립중앙박물관 등이 무료다.
암튼 쾌재를 부르며 입장했다. 국립고궁박물관은 고궁이라고 적혀 있지만 조선 건국부터 대한제국에 이르기까지 왕실의 문화유산을 모아놓은 박물관이다. 그래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고궁박물관이라는 명칭보다 왕실박물관이라고 해야 더 맞을지도 모른다. 대한제국 시절 1908년 창경궁 내에 만들어진 제실박물관에서부터 시작해 1992년 궁중유물전시관으로 개편되었다가 2005년 경복궁 경내에 고궁박물관으로 자리잡았다고 한다.
이 고궁박물관은 사실 현존하는 유일한 중앙청(구 조선총독부 건물) 부속 건물이다. 중앙청에 근무하는 공무원들의 복지시설인 후생관으로 이용하다가 1995년 중앙청 건물을 철거하면서 리모델링해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하다가 2005년 중앙박물관이 용산으로 이전하면서 현재의 고궁박물관 건물이 되었다.
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탓에 대부분 광화문과 경복궁을 관람하기 위해 찾아왔다가 우연찮게 무료 박물관이라고 해서 찾아들어온 사람들이 많을 것 같은 느낌이다. 지하 1층부터 1층, 2층까지 3층의 전시관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아쉽게도 조선왕실의 역사를 담은 2층은 리뉴얼 중이라 들어갈 수가 없었다. 10월 29일까지 휴관이라고 하니 참고하길 바란다.
지하철 출구와 지하도를 거쳐 국립고궁박물관 정문은 계단으로 되어 있는데 계단을 오르면 2층이다. 2층부터 1층, 지하 1층 순으로 둘러보면 된다. 총 2천여 점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2층 전시관은 '조선의 국왕실', '조선의 궁궐실', '왕실의 생활실' 등의 테마를 다룬다. 1층 전시관은 '왕실의 의례실', '대한제국과 황실실', '천문과 과학 1실'에 대해 전시하고 있으며, 지하 1층은 '왕실의 회화실', '궁중의 음악실', '왕실의 행차실', '천문과 과학 2실'로 구성되어 있다.
2층은 공사 중이라 패스하고, 1층부터 들러보기로 했다. 1층 로비에는 순종황제와 순종효황후가 탔다는 자동차(어차)가 전시되어 있다. 미국 제너럴 모터스가 제작한 캐딜락 리무진으로 7인승에 8기통, 연식은 1918년식이다. 세계적으로 20여대만 남아 있는 귀한 차이다.
순종효황후가 탔다는 어차는 영국의 다임러가 제작한 리무진이다. 7인승, 4기통 엔진에 연식은 1914년식으로 추정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3대만 남아 있고 국내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자동차로 기록되어 있다.
1층은 대한제국 시절을 주로 담고 있다. 외세의 압박이 거세지던 무렵인 1897년, 고종은 황제로 즉위하고 국내외에 독립국가의 위상을 알리기 위해 대한제국을 선포하게 된다. 대한제국은 정치, 사회, 경제 등 여러 분야에서 개혁을 진행했고 근대화의 발판이 될 서양의 기술과 문화를 받아들였다. 대한제국 전시실에서는 황제와 황후의 자동차, 황실의 사진, 생활 공간 등을 통해 근대화로 나아가는 당시의 모습을 보여준다. 대한제국은 한일 강제병합으로 인해 역사가 13년밖에 지속되지 못했지만 우리 역사 최초의 근대국가이자 황제국이었다는 점에서 큰 발자취를 남겼다.
1층에는 최근 만들어진 듯한 특별관이 있다. 국가유산을 지킨 사람들이라는 전시관이 생겼다. 최근 문화재를 국가유산으로 바꾸고 문화재청도 이름을 국가유산청으로 바꾸면서 생긴 전시관인 듯하다. 문화재가 무형유산까지 담기에는 한계가 있어 문화유산, 자연유산, 무형유산까지 모두 아우르는 국가유산으로 명칭을 변경한 내용 등이 담겨 있다.
고궁박물관에서 유심히 봤던 것 중 하나는 과학 전시물이다. 특히 태어나서 처음으로 본 '자격루'에 한참 눈길이 갔다. '스스로 치는 시계'라는 뜻인 자격루는 세종대왕의 명으로 장영실이 완성한 것인데, '천문과 과학 2실'에서 이를 재현해 놓았다. 실제 원리대로 만들어져, 매 시간마다 자격루가 작동하는 모습과 함께 소리를 들려준다. 현대의 시계와 비교하면 1~3분 정도 오차가 발생한다고 하는데 그래도 당시 과학기술로 이런 걸 만들었다는 게 놀랍다. 그 옆에 1571년 밤하늘의 별자리를 목판에 새겨 종이에 찍어낸 천상분야열차지도 실물도 신기했다.
지하 1층에 있는 '왕실의 회화실'에는 궁중 회화인 어진(임금의 초상화, 고종의 어진이 있다), 궁중 기록화, 병풍, 장식 벽화, 궁궐도, 지도 등을 전시하고 있다. 이외에 왕을 비롯한 왕실 가족들이 여가나 취미활동으로 그린 그림과 감상을 목적으로 소장했던 국내외 명작들도 있다. '궁중의 음악실'에서는 각종 의례가 행해질 때 사용한 축, 나각, 태평소, 절고 등의 악기들을 볼 수 있다. 지하 1층 한 켠에 마련된 카페와 레스토랑을 겸하는 '고궁뜨락'에서 맛있는 음식과 커피, 음료 등을 주문해서 먹을 수 있다.
국립고궁박물관에서는 다른 박물관에 비해 외국인 관광객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아마도 외국 관광객들이 주로 찾는 경복궁 바로 옆에 있기 때문인 듯하다. 로비에 스탬프가 마련되어 있는데 스탬프를 찍는 외국인들이 꽤 많다. 스탬프를 다 찍으면 선물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주말에 날은 더워 어디 갈 데가 없다면 무료 관람 가능한 국립고궁박물관이 어떨까?
<ansonny@review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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