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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리뷰] 영조의 효심이 묻어나는 천년고찰 ‘파주 보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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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타임스=김우선 기자] 파주 보광사를 알게 된 건 20년 전이다. 군 생활을 파주에서 보냈지만 보광사는 장인어른이 돌아가시고 유골을 보광사 납골당에 모시면서 그때 처음 가봤다. 그리고 매년 한두 차례씩 보광사를 찾는다.


파주 보광사 전경


올해도 어김없이 보광사를 찾았는데 여느 때와는 다른 소원을 빌었다. 부처님에게 백팔배를 올리는 것은 물론 아버님의 영령에게 외손주의 대학 합격을 기원하기 위함이었다. 그 전엔 납골당에만 왔다간 까닭에 자세하게 볼 일이 없었는데 이번엔 아내가 백팔배를 할 동안에 사찰 여기저기를 둘러볼 기회가 생겼다.

 

보광사 표지석

 

새로 들어선 보광사 출입문(일주문)

 

보광사는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외형적으로 많이 달라졌다. 우선 도로에서 보광사 올라가는 길에 웅장한 문이 생겼다. 일주문은 아니고 간판격인 출입문이다. 현판엔 천년고찰고령산보광사라고 쓰여 있다. 주차장을 지나서 해탈문이 보이는데 이것 역시 새로 생긴 문이다.

 

그러고보니 보광사엔 일주문이 없다. 보통 일주문은 한자 그대로 기둥이 한 줄로 되어 있는, 그래서 일직선의 두 기둥 위에 지붕을 얹는 형태로 되어 있는데 보광사는 그 일주문이 없다. 아마도 첫 번째 출입문이 일주문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해탈문을 지나 보광사 본당으로 올라가는 길에도 왼편으로 데크 계단이 놓였다. 코로나 전만 하더라도 데크 길이 없어 차들이 사람들을 비집고 오가는 구조였다.

 

납골당이 생기면서 보광사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 돈으로 다양한 건축물과 시설들을 증축한 듯하다. 20년 전만 해도 주차장이 십여 대 정도밖에 대지 못할 정도로 협소해 아주 불편한 절이었는데 주차장도 백여 대의 차를 주차할 만큼 넓어졌다. 보광사를 자주 찾아야 하는 입장에서는 매우 반가운 일이다.

 

보광사 대웅보전

 

보광사 대웅보전

 

암튼 각설하고, 보광사는 경기도 파주시 고령산 기슭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봉선사의 말사이다. 통일신라시대 진성여왕의 어명에 의해 승려 도선이 창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처음에는 고령사로 불리다가 언제부턴가 보광사로 불리게 됐다고.

 

통일신라시대에 창건했으니 천년고찰이다. 임진왜란과 한국전쟁 때 많은 전각들이 소실되긴 했는데 대웅보전을 위시한 전각들은 오래된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현재의 대웅보전과 광응전, 만세루는 조선 영조 때 지어서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 지금까지 300년 넘도록 건물이 온전히 보전되고 있는 이유는 보광사가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의 묘인 소령원의 능침 사찰로 지정됐기 때문이다.

 

오래된 흔적이 역력하다.

 

대웅보전 외벽

 

보광사 대웅보전 오른편에는 어실각이라는 전각이 있는데 이 곳에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의 영정과 신위가 모셔져 있다. 숙빈 최씨는 무수리 출신으로 궁에 들어가 숙종의 성은을 입어 비가 된 여인으로, 영조를 출생했고 드라마 동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숙빈 최씨의 영정과 신위를 모신 어실각 앞에는 향나무 한 그루가 서있다. 수령이 300년이 넘은 이 향나무는 영조가 어실각을 조성할 때 함께 심은 나무로 전해진다. 숙빈 최씨의 아들인 영조는 조선의 21대 왕이 되었지만 어머니 숙빈 최씨는 왕비의 지위에 오르지 못했다. 장희빈과 같은 일이 되풀이될 것을 두려워한 숙종이 궁녀에서 왕비로 오르는 것은 금지시켰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영조는 어미니 숙빈 최씨를 왕비로 추승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

 

어머니의 영정과 신위를 모신 보광사에 공을 들인 건 그 흔적 중 하나다. 보광사 곳곳엔 영조의 흔적이 여러 곳에 있다. 대웅보전과 만세루를 중수하고 대웅보전 현판엔 자신의 글씨를 새겼다. 현재 걸려 있는 대웅보전의 현판은 영조의 친필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일까. 대웅보전과 만세루는 한국전쟁 때도 불타지 않고 여전히 건재해 있다.

 

외벽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외벽의 벽화

 

보광사 대웅보전은 앞면 3, 옆면 3칸의 규모로 지붕 옆면이 여덟 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양쪽 옆면과 뒷면은 두꺼운 나무판으로 벽을 만들었는데 보통의 벽이 회벽인데 비해 나무판으로 된 것이 특이하다. 양쪽 벽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10개의 판벽에는 불교 회화와 민화풍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극락정토로 건너갈 때 타고 간다는 반야용선을 비롯해 흰 옷을 입은 수월관음과 동자가 앉아 있는 커다란 바위를 세 사람이 지고 가는 모습, 화사한 연꽃 위에 앉아 있는 불보살들, 부처를 수호하는 신장과 사자가 그려져 있다.

 

대웅보전 안에는 1215년에 만든 목조비로자나삼존불과 문수보현보살상이 봉안되어 있다. 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는 조선 후기의 정교하고 화려한 장식을 보여주고 있고 정면 기둥 위에는 용의 형상이 조각되어 있다.

 

대웅보전 내부

 

보광사 동종

 

 

천년고찰인 까닭에 보광사에는 보물이 여럿 있다. 보광사 동종이 대표적이다. 보광사 동종은 조선 후기 종을 만드는 장인 중 가장 솜씨가 좋았다는 승려 천보가 1643년에 제작한 작품이다. 동종의 아래에는 보광사가 임진왜란으로 황폐화되자 승려들이 힘을 합쳐 사찰을 다시 일으키는 과정이 적혀 있으며 무게 300여근을 들여 동종을 제작하는 과정이 쓰여 있다. 파주 보광사 동종은 17세기 동종 중에서도 최고의 수작으로 꼽히며 역사적, 학술적 자료로서도 가치가 높은 보물이다.


<ansonny@review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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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3

곰돌이아빠I리뷰어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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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돌이아빠I리뷰어
2024-11-13 10:18
정작 보광사는 지나치고 등산만 했네요.

산을 올라가면 마장호수가 시원하게 보입니다.

계곡도 상당히 좋구요.

김우선I기자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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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선I기자
2024-11-13 10:47
ㅎㅎ 저는 보광사는 자주 갔어도 고령산은 한번도 안가봤네요. 산 정상에 군 기지가 하나 있는 거 같긴 하던데요.

곰돌이아빠I리뷰어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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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돌이아빠I리뷰어
2024-11-13 10:51
녜 그쪽 산들에 부대가 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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