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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남색대문>, 열일곱 청춘의 세 가지 여름 빛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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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타임스= 땡삐 리뷰어]

 

2002년작, 대만 83분 (2021년 8월 개봉)

감독 : 이치엔

출연 : 계륜미, 진백림. 양우림

줄거리 : 단짝 친구 ‘린 위에전’가 짝사랑하는 같은 학교 남학생 ‘장 시하오’에게 대신 마음을 전하게 된 ‘멍 커로우’. 그러나 ‘멍 커로우’의 비밀을 알지만 사랑을 멈출 수 없는 ‘장 시하오’ “이 여름이 지나고 나면, 내 마음이 선명해질까?”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에 어쩔 줄 몰랐던 열일곱 가슴 아린 짝사랑과 설레는 첫사랑 사이에서 한 여름의 성장통을 지나는 세 청춘의 이야기

 

 

<말할 수 없는 비밀>이 국내에서 많은 인기를 끌었기 때문에 순수한 미소의 계륜미를 기억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그 영화에서는 계륜미의 매력이나 연기에 높은 점수를 주지는 않았다. 오히려 뒤늦게 만난 그녀의 데뷔작 <남색대문>을 접하고 그녀의 중성적인 매력과 언뜻 언뜻 비치는 무채색의 표정이 더 와닿았다고 할까.

 

<남색대문>은 계륜미와 진백림의 데뷔작으로 당시 둘 다 우리나라 나이로 스무살이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영화 속 두 청춘의 모습과 싱그러운 여름 배경이 너무 잘 어우러진다. 게다가 국내 개봉이 많이 늦은 2021년이라, 두 스타의 19년을 거슬러 올라가 청춘 시절을 살짝 엿보고 온 기분이랄까. 쨍 하지 않은 필름 느낌의 거친 화면이 오히려 그들만의 순수하고 소박한 청춘의 시기를 잔잔하고 아련하게 그려내고 있다.

 

 

초반에는 그냥 평범한 열일곱 청춘의 풋풋한 첫사랑과 짝사랑의 이야기라 보여진다. 우리나라 청춘 영화는 좀 유치해 보이는데, 낯선 배우가 예쁜 척 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연출과 연기, 스토리의 디테일이 달라서일까. 사랑의 작대기가 한 방향을 향하고 있는 완벽한 삼각관계라서 뻔하지 않았을지도.

 

아무튼 그 시절을 한참이나 지나온 내게는 너무도 예쁘게만 보인다. 짝사랑하는 남학생의 소지품을 모두 모아놓은 장면은 좀 과한 것도 있지만, 그 마음만은 너무 곱게 느껴지고. 멀리서 시하오의 모습을 훔쳐보는 위에전의 두근거리는 마음. 그 곁을 조용히 지키며 애달파하는 마음마저 함께 나누는 커로우까지.

 

그리고 위에전의 마음을 대신해서 전하는 커로우를 바라보는 시하오의 눈빛과 미소에서는 어긋한 사랑의 시작일까 조마조마하게 된다. 그러나 반전은 여기서부터 조용히 꿈틀댄다.

 

시하오와 체육선생님에게 “나랑 키스 하고 싶냐?”고 묻는 커로우. 속깊은 용기와 결단을 나타내는 장면이죠. 왜 그런 질문을 하냐는 사하오에게 커로우는 조심스럽게 비밀을 내어놓는다. 커로우는 남자가 아닌 단짝 친구 위에전을 좋아한다며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스러워하는 마음을 고백한다. 그러자 시하오는 자신과 키스를 해 보면 감정을 확인할 수 있지 않겠냐며 묻고 둘은 키스를 하지만, 커로우의 마음은 여전히 혼란스럽기만 하다.

 

 

순수하고 편견 없는 시하오는 커로우에게 자신의 마음을 위에전에게 고백하라고 조언하는데. 진심이 반드시 모든 이에게 그대로 가 닿지는 않기에 위에전은 커로우를 피하게 된다. 그런 위에전을 따라다니는 커로우의 모습이 너무 귀엽고 애틋하고 매력적으로 그려진다. 개인적으로 이 장면이 참 좋았다. 시하오에게 거절당한 위에전이 펜으로 잉크가 닳을 때까지 시하오의 이름을 다시 쓰기 시작하는 장면도, ‘기무라 다쿠야’의 이름으로 바꿔쓰는 장면도 개인적으로는 추억이 되살아 나며 좋았다. 모든 것이 서툴었던 그 시절 순수한 청춘은 그렇게 서로의 진심과 관계 속에서 한 걸음 성장해 나간다.

 

커로우가 느끼는 위에전에 대한 감정이 우정을 넘어선 사랑인지, 아니면 극도로 강력한 인간적인 애정인지는 알 수 없다. 그래서 시하우의 바람처럼 1년, 3년, 5년 뒤에 남자를 좋아하는 마음이 생겨나게 될지도 모르는 일시적인 감정의 혼란일 수도 있고, 커로우는 그냥 여자를 더 사랑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남색대문’ 안에 더 이상 갇혀 있지 않고, 밝게 웃고 서 있는 시하우와 같은 ‘다름을 인정하는 미소’에 힘입어 밖으로 나올 것이 분명하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기 위해 여름 한 계절을 열심히 고민하고 달려왔기 때문이다.

 

 

영화 내내 싱그러운 초록이 배경이 되어 주었고,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커로우와 시하우의 모습이 자유롭고 미래지향적으로 보여준다. 나도 어렸을 때 자전거를 탈 수 있었다면 내 청춘도 좀 더 다양하고 신나게 질주할 수 있었을까 하고 잠깐 생각해 보게 될 정도로.

 

‘남색’은 대만에서 ‘약자들을 위한 색’이라고 한다. 그래서 대만의 버스에는 노약자석과 임산부석이 남색이라는 것. 아마 영화의 제목 ‘남색대문’은 동성애자라는 사회적인 약자의 문에 갇혀 있는, 또는 그 문을 나오려는 커로우의 상황을 말하는 것일지도. 그냥 남색의 대문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 문을 열면 오후 3시의 햇빛과 함께 여전히 그 여드름을 지닌 채 서 있는 시하우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커로우 옆에 시하우 같은 친구가 있어서 너무 다행이라고 안심하게 된다.

 

커로우가 체육관 벽 앞에서 말하려 했던 것은 자신이 평범하다는 외침이었고, 그것을 지켜본 시하우가 그녀를 이해하고 힘이 되는 준다.

 

“난 여자다. 난 남자를 좋아한다.”

“장 시하우, 여기 있다”

 

우리 모두는 다른 사람에 대한 편견없고 순수한 배려 덕분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고, 묵묵히 곁을 지켜주는 주변 사람의 응원 덕분에 오늘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남색대문은 누구나 지나왔을 통과의례 같은 덥고 눅눅하지만 뜨겁고 초록초록한 청춘의 계절을 솔직하고 잔잔하게 그려냈다. 많이 사랑하고 깊이 고민하는 청춘의 계절, 그 여름이 더 싱그럽게 다가온다.

 

커로우의 말처럼 ‘이 여름이 지나고 나면 내 마음이 선명해질지’ 나도 궁금하다. 세 청춘의 짝사랑은 모두 실패했지만, 자신을 좀 더 사랑할 수 있게 된 것 같아 그 점도 좋았다. 오랜만에 마음이 노골노골해지고 풋풋해지고, 심장이 설레는 소리를 듣게 되는 봄맞이 용으로 좋은 매력적인 영화다.

 

<tomyif@review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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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2

안병도I기자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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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도I기자
2023-02-20 09:39
저는 요즘 들어서 좋은 의미로 청춘영화를 못보겠어요. 그 시절이 너무 그리워질까봐서요. 그때의 싱싱했던 몸과 마음은 이제 없으니... ;;

땡삐I리뷰어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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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삐I리뷰어
2023-02-20 10:53
ㅋㅋ 그럴수록 정면대결해야죠... 힐링도 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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