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희망이 아닌 암울하기만 한 미래 <다음 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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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타임스=김우선 기자] “카스 2병만 주세요.” 담담히 맥주만 마시고 일어선다. 한 겨울 맨발에 슬리퍼만 신고 나온 화장기라곤 없는 그녀. 문틈 사이로 빛이 들어와 언 발을 어루만져 주지만 희망이 되어 주진 못했다. 바닥에 덮여 있는 눈, 슬리퍼 끄는 소리, 바람소리, 물소리…한참을 초점 잃은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던 그녀는 저수지로 쓸쓸히 걸어 들어간다. 영화 <다음 소희>다.
왜 ‘다음’ 소희였을까. 감독은 <다음 소희>의 ‘다음’은 우리 곁의 수많은 ‘소희’를 위한 희망이라고 얘기한다. “소희를 잃은 우리가 여기에 주저앉지 않고 이 다음을 생각하게 하는 희망이 되길 바랐다”는 뜻에서 ‘다음’ 소희라고 지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감독의 바람과 달리 현실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 지금 이 순간도 여전히 ‘다음’가 아닌 ‘이전’ 소희만 존재할 뿐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암울하다.
현실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 그래서 암울한 영화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아빠, 나 콜수 못 채웠어” 아빠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 인터넷과 IPTV 해지를 원하는 고객에게 역으로 상품을 판매하는 ‘해지방어 부서(하청기업)”에서 일하다 목숨을 끊은 홍수연 학생이 실제로 겪은 일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2017년 1월, 전주에서 대기업 통신회사의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갔던 고등학생이 3개월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있었다. 원청업체는 LG유플러스, 사고가 발생한 하청기업-협력업체이지만 단순 하청이 아닌 LG그룹 일가가 운영하는 기업이다-은 LB휴넷이다. LB휴넷은 고인이 가정불화와 자해 이력이 있고, 산재처리가 이뤄지지 않자 기자를 동원해 사건을 확대시키고 있다고 했고 LG유플러스도 끝내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춤을 좋아했던 호기심 많고 쾌활한 특성화고 여학생 소희. 담임교사는 소희에게 ‘대기업 사무직’이라고 소개한다. “하청 아니냐”고 묻는 소희에게 교사는 ‘급’이 다르다고 답한다. 실습 도중에 담임교사로부터 자신의 이름이 불렸을 때 대기업에 취업할 수 있다는 생각에 얼마나 설레었을까? 그 희망은 출근 당일에 무참히 박살난다.
이 영화에서 가장 답답했던 몇 장면은 거의 모든 조직에서 지금도 통용되고 있는 ‘성과 지표’다. 매달 누가 가장 콜을 많이 받았는지, 누가 해지방어를 가장 많이 달성했는지 벽면 가득 빼곡히 적혀 있는 숫자들. 이 성과지표는 취업률에 목을 매는 학교에도, 지원금을 핑계로 학교를 닥달하는 교육청에도, 심지어 경찰서에도 그 놈의 실적 타령이다.
사람을 숫자로만 평가하는 정량적 평가는 구성원들을 스스로 가해자로 만든다. “이제 교육부로 가실 거에요?”하고 말하는 교육청 장학사처럼 말이다. "니들이 아무리 날고 뛰어봤자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고 장학사는 말하는 듯하다. 세상 벽은 그만큼 견고하다는 뜻이다.
출근하는 길에 항상 지나쳐야 하는 ㅇㅇ비즈니스고등학교 정문 옆에 걸려 있는 현수막에는 지난해에 대기업에 취업한 수많은 현장실습 학생들의 이름이 자랑스럽게 빼곡히 적혀 있다. 이들도 다음 소희와 같은 일을 겪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과연 우리 아이들은 이 굴레를 벗어날 수 있을까? 고등학생 아들 둘을 둔 입장에서 가슴 한 켠에 큰 돌덩이가 쿵 하고 내려앉아 영화를 보는 내내 답답하게 만들었다. 한때 특성화고에 보내야 하나 고민하기도 했지만 일반고에 입학한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해야 할까.
또 하나 답답한 장면은 소복히 쌓인 흰 눈이다. 흰 눈을 보면서 답답해진 건 처음이다. 영화 도입부에 지하 연습실에서 올라올 때 소복소복 내렸던 소희를 설레게 했던 첫 눈은 팀장이 자동차 속에서 자살할 때도, 소희가 저수지로 쓸쓸히 걸어갈 때도 사건을 덮게 하고 눈물을 감추게 하는 역할을 했다.
어른들이 봐야 할 영화
영화를 극장에서 보지 못한 건 아쉽다. 백상 영화상 작품상 후보에 낯선 영화 제목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다른 영화는 거의 다 봤거나 언론지상에서 한두번쯤 거론된 작품들이다. 이 영화를 늦었지만 보게 된 계기다. 칸 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되어 “충격적이면서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작품”이라는 극찬을 받았던 영화란다.
현장실습이라는 미명하에 죽어간 고등학생들의 죽음이 <다음 소희>뿐 아니다.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고치다가,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가, 생수 공장에서 일하다가 스러진 어린 영혼들. 장소와 하는 일만 바뀌었을 뿐 사건의 본질은 동일했고, 이 모든 일들은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여전히, <다음 소희>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어른들이 이 영화를 꼭 봐야 할 이유다.
<ansonny@review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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