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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리뷰] 아름다움 속에 감춰진 아픔, ‘제주 4.3’의 흔적을 좇아③ 정방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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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타임스= 라라 리뷰어]

제주를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필수코스로 들리는 곳, ‘정방폭포’다.

 

천지연폭포, 천제연폭포와 더불어 제주도의 3대 폭포 중 하나로 꼽히는 정방폭포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폭포수가 절벽을 타고 바다로 직접 떨어지는 폭포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해안으로 직접 떨어지는 정방폭포의 시원한 물줄기를 차마 정면으로 마주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제주4·3’ 당시 이곳에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다.

 

오순명 어르신(80세)도 그들 중 하나다.

당시의 이야기를 자세히 전해주며 정방폭포까지 사람들을 안내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정방폭포를 차마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고 이내 고개를 돌려 버린다.

 

 

‘제주4·3 정방폭포 관련 기록’에 따르면 정방폭포와 지금의 서복전시관 옆 소낭머리 일대에서 희생된 사람은 무려 248명이다.

 

현재 4·3희생자유족회 서귀포시지부 지부장을 맡고 있는 오순명 어르신은 당시 다섯 살 꼬마였다. 집에 있다가 영문도 모른 채 갑자기 끌려가 수감된 아버지(15일 후 정방폭포 해안절벽에서 즉결처형되었다 한다), 그리고 아버지를 면회 가던 길에 군인들이 쏜 총에 맞아 돌아가신 어머니. 그렇게 다섯 살 꼬마는 하루아침에 고아가 되었다.

 

“어릴 적, 외할머니하고 살았는데, 어느날 부모님 산소를 갔더니 봉분이 하나밖에 없더라구요. 그제서야 할머님이 얘길 해주셨죠.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님까지 돌아가셔서 하나의 묘에 두 분을 함께 안장했다고요. 당시 아버님 나이가 스물 아홉, 꽃다운 청년이었죠.”

* * *

 

정방폭포 인근은 ‘제주4·3’ 당시 한라산 이남 지역(제주도에선 산남 지역이라 부른다)의 중심이었다. 정방폭포 옆, 지금의 서복전시관 자리와 주변으로 면사무소, 남제주군청, 서귀포경찰서 등이 몰려 있었고, 서귀면사무소에는 대대본부가 설치돼 토벌대의 주요 거점지로 역할했다 한다. 악명 높은 서북청년단 사무실도 인근에 있었다.

 

1948년 정방폭포. 정방폭포 위 건물들은 당시의 전분 공장들.(현재는 서복전시관이 들어서 있다)<사진으로 보는 제주역사>

 

 

<사진으로 보는 제주역사>

 

또 지금의 서복전시관 근처, 해안가 주변으로는 전분공장, 단추공장, 통조림공장 등이 있었는데, ‘제주4·3’ 당시 이들 공장은 모두 임시 수용소로 사용되었다 한다. 폭도로 오인받아 중문면, 남원면, 안덕면, 대정면 등 서귀포 지역 곳곳에서 끌려온 사람들이 이곳에 임시 수용된 것이다. 하지만 임시 수용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수감자 모두는 1948년 11월부터 1949년 1월까지 3개월여에 걸쳐 해안절벽이 아름다운 정방폭포와 바로 옆 소낭머리 일대에서 즉결처형되었다.

 

오순명 어르신의 설명에 따르면, 수감자들은 서로 끈으로 묶인 채 해안절벽 위에 몇 줄로 세워졌다. 처형 방식은 맨 앞줄의 사람들만 총으로 쏘는 식이었다. 앞줄을 넘어뜨리면 뒷줄도 자연스레 떠밀려 바다로 떨어지도록 한 것이다. 목적은 하나, 총알을 아끼기 위해서였단다.

 

당시 수습된 시신도 일부 있었지만 100여구 이상은 지금까지 수습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소낭머리에서 바라본 정방폭포

 

소낭머리 가는 길

 

 

 

* * *

 

소낭머리는 칠십리음식특화거리 입구의 왼편에 자리하고 있다.

 

‘제주4·3’은 유족들에게서 가족만 앗아간 게 아니었다. 굴레처럼 덧씌워진 연좌제는 남겨진 가족들을 수십여 년간 따라다녔다.

 

오순명 어르신의 경우는 교사가 되고 싶어 교육대학에 진학했지만 교원 임용이 번번이 좌절됐다 한다. ‘연좌제’ 때문이었다. 자살 시도만도 수 차례였다니,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가 그 힘듦을 과연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소낭머리는 서귀포 도심 올레길인 하영올레 2코스가 지난다.

 

어르신은 지금도 기회만 되면 누구든 상관 없이 제주4·3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전하고 있다.

 

“니편, 내편으로 편가르기를 해서, 잘잘못을 따지려는 게 아니에요. 이유는 오직 하나, 후대에는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발생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죠.”

 

어르신이 다른 유족들과 함께 정방폭포 근처에 4·3 위령비를 세우기 위해 수년 동안 노력해온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제주4·3’ 당시 산남지역 최대 규모의 학살터이자 가장 많은 토벌대가 주둔했던 곳, 그 아픈 역사를 후대에 제대로 전해야 하니까.

 

그리고 마침내 2021년 12월 말, 유가족들의 숙원사업 중 하나가 결실을 맺는 듯했다. 인근 자구리공원 내 25㎡ (약 7.5평) 부지에 만들 예정이던 추모 공간 조성사업이 첫 삽을 뜬 것이다. 하지만 추모 공간 설립은 첫 삽을 뜨자마자 인근 주민들과 상인들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쳐 1년 이상 무기한 중단됐다. 사업이 재개된 건, 올 2월이다. ‘제주4·3 추모공간’이 ‘집 값을 떨어지게 하고, 관광객을 오지 않게 하는’ 시설이란 게 반대 이유였다. 제주도민 모두가 안고 있는 아픈 역사, 그리고 그 아픔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기 위한 공간이 칠십리음식특화거리 상인들과 근처 아파트 주민들에겐 내 집 앞에 있으면 안 되는 혐오시설이라니...

 

‘제주4·3’을 제대로 알리는 건 여전히 갈 길이 멀어 보인다. 하지만 지난 2000년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된 이후 느리지만 한 걸음씩 전진하고 있으니 인내심을 갖고 부단히 노력해야 할 것 같다.

 

정방폭포

- 오픈 시간 : 매일 09:00 ~17:10

- 입장료 : 어른(개인) 2,000원, 청소년&어린이 아동(7~24세) 1,000원 , 어른(단체, 10인 이상) 1,600원

 

소낭머리

- 위치 : 서귀포시 서귀동 94-1 (서귀포 칠십리음식특화거리 입구에서 왼쪽)

- 입장료 : 없음

 

<lala_dimanc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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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6

김우선I기자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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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선I기자
2023-04-13 07:07
정방폭포에서 이런 아픔이 있는 줄 몰랐네요. ㅠㅠ

수시로I리뷰어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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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시로I리뷰어
2023-04-13 08:23
제주 곳곳에 깊은 골이 서려있네요. ㅜ.ㅜ

TepiphanyI리뷰어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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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piphanyI리뷰어
2023-04-13 09:05
역사적으로 힘든 경험을 많이 하여 제주분들이 경계심이 많고 타지인에 대해 오픈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고통스러운 트라우마죠.

김지향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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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향
2023-04-13 10:57
저도 처음엔 섬이라 배타적이란 말만 듣고 그런가보다 했었는데 조선시대에 약 200년 동안 섬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한 출륙금지령, 그리고 7년 넘게 계속된 43(초벌대는 육지 출신) 등 더 깊이 있게 지역의 스토리를 알고 나니 제주도 사람들이 그럴 수밖에 없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TepiphanyI리뷰어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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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piphanyI리뷰어
2023-04-13 11:20
조선시대에 일본이 가깝고 조선에서 관리가 안된다는 이유로 일본 해적과 해군의 약탈과 납치도 많았다고 하더라고요..

최봉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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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봉애
2023-04-13 14:30
아 아 역사여, 도대체 어디까지 숨겨져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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