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증 리뷰] 대한민국 지폐는 왜 조선시대에 머물러 있나 > 문화&이벤트 리뷰

본문 바로가기

문화&이벤트


[궁금증 리뷰] 대한민국 지폐는 왜 조선시대에 머물러 있나

근현대 인물이 아닌 전부 조선시대 인물…김구 10만원권 선정됐다가 무산

본문

[리뷰타임스=김우선 기자] 1000원은 퇴계 이황, 5000원은 율곡 이이, 1만원은 세종대왕, 5만원은 신사임당. 우리나라 지폐 속 인물들이다. 보통 각 나라 지폐들을 보면 그 나라의 건국에 기여한 인물들이 많은데, 왜 우리나라는 대한민국도 아닌 조선시대의 위인들로 채워졌을까 하는 의문을 가진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리뷰타임스는 우리나라 지폐 속 인물들에 대한 리뷰를 해보기로 했다.

 

지폐는 국가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다. 종이로 만든 화폐인 지폐는 그래서 그 나라를 대표하는 가장 정교화되고 첨단기술이 적용된 인쇄물로 만들어진다. 지폐 제작 과정에서 위조방지를 위한 특수물질과 그림 등이 삽입되고 화폐 이미지 역시 그 나라를 대표하는 인물이나 건물 등이 들어간다. 전 세계 80% 이상의 나라가 화폐 도안에 인물 초상을 넣어 사용하는데 대부분 역사적 위인들이다.

 

 

각 나라별 지폐 속 이미지

미국 지폐의 경우 역대 대통령과 정치인 등이 등장한다. 1달러에는 조지 워싱턴, 5달러에는 링컨, 10달러에는 해밀턴, 20달러에는 앤드루 잭슨, 50달러엔 율리시스 그랜트, 100달러는 미국을 건국한 벤자민 프랭클린이 그려져 있다. 달러 지폐의 뒷면에는 국회의사당이나 백악관 등 미국을 대표하는 건물이 새겨져 있다.

 

일본은 내년에 20년만에 화폐 디자인을 바꾸는데 1천엔에는 일본 세균학의 선구자인 기타사토 시바사부로, 5천엔에는 일본 여성 고등교육 발전에 기여한 쓰다 우메코, 1만엔에는 일본 경제 근대화의 아버지인 시부사와 이에이치가 들어간다고 한다.

 

정치와는 상관없는 인물들이 들어가는 지폐도 있다. 스웨덴에는 총 6개의 지폐가 있는데 역사적 인물보다는 문학, 문화, 예술 등의 인물로 채워졌다. 20크로네 지폐에는 말괄량이 삐삐로 유명한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을, 50크로네 지폐에는 자연과 바다를 주제로 노래하는 국민가수 에베르트 토베를, 100크로네 지폐에는 할리우드 영화배우 그레타 가르보를, 200크로네 지폐에는 영화감독이나 제작자인 잉마르 베리만을, 500크로네 지폐에는 세계적 오페라 가수였던 비르기트 닐손을, 그리고 가장 가치가 높은 1000 크로네에는 2대 유엔총장을 역임했던 다그 함마르 셸드를 그려넣었다.

 

스웨덴의 지폐에는 문학, 예술 등의 인물이 들어가 있다. 말괄량이 삐삐의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들어간 20크로네 지폐

 

또 인물이 아닌 건축물 이미지만 넣은 화폐도 있다. 유럽연합 국가들이 사용하는 유로화는 지폐 앞면에 유럽의 각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양식이 들어가 있다. 5유로는 고대 로마 시대의 거대한 대문을, 10유로에는 중세 유럽의 로마네스크 양식에서 따온 아치 구조의 건축물을, 20유로에는 고딕 양식의 보석으로 불리는 스테인드글라스를, 50유로에는 고대 로마 대문에 돌출돼 있는 기둥과 신전에서 본뜬 삼각형 지붕을, 100유로에는 화려한 바로크 양식을, 200유로에는 철과 유리로 만든 아르누보를, 그리고 500유로에는 철근 콘크리트를 사용한 근대 건축물이 등장한다. 이 건축물은 모두 창문이나 통로 형태로 이는 유럽의 개방 정신과 협력을 표현한다고 한다.

 

인물이 아닌 건물을 주요 도안으로 채택한 유로화 지폐

 

아랍에미레이트의 지폐에는 원전 건물이 그려져 있다.

 

역사적 인물이나 건물이 아닌 색다른 이미지가 들어간 지폐도 있다. 아랍에미레이트의 경우 최고액권인 1000 디르함(화폐 단위) 지폐의 경우 뒷면에 바라카 원자력 발전소 이미지가 새겨져 있다. 이 원전은 우리나라가 최초로 개발한 원전 노형을 수출한 사례로 원전 건설을 기리기 위해 넣었다고 한다. 또 라오스 지폐 중 5000킵(화폐 단위)에는 시멘트 공장이 인쇄돼 있다. 농업이 위주인 라오스에서 산업화를 상징하는 시멘트 공장은 각별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시 인물로 돌아가서, 지폐에 인물의 얼굴을 넣는 이유는 그 인물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지폐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인 위조 방지를 위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지폐에 들어가는 인물들의 얼굴을 보면 대부분 좌우로 비스듬한 각도로 그려져 있는데 이런 비스듬한 각도의 초상화는 지폐의 위조를 굉장히 어렵게 만들며 각도가 조금만 틀어져도 티가 나므로 일반인도 위조를 구별하기 쉬워진다는 것이다. 또한 수염이나 머리카락을 덥수룩하게 그려서 위조를 방지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지폐 속 인물들은 어떻게 선정됐나

지폐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체로 각 나라에서 존경할만한 가치를 가진 위인, 혹은 기념하고자 하는 과거 인물을 넣는 게 일반적이다. 그래서 보통 구시대가 아닌 근현대사 인물을 넣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근현대사가 굴곡이 많아 논란의 여지를 없애기 위해 구시대 인물을 넣었다는 주장도 있다.

 

우리나라 화폐에도 근현대사 인물이 들어간 적이 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도안 모델이었던 적도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1950년부터 정권이 무너지는 1962년까지 총 10종의 지폐와 주화의 도안 모델을 독식했다. 현존 인물이 지폐 속에 들어가는 경우는 주로 북한 같은 독재국가나 영국 등의 왕권 국가에서 발견된다.

 

이승만 대통령이 지폐 인물로 들어간 적도 있었다.

 

1962년 제3차 긴급통화조치 이후 새로 발행된 지폐에는 세종대왕과 서울 숭례문, 독립문 등이 그려졌다. 뒷면에는 한국은행 본관과 거북선 등이 포함되었다. 1970년대는 오천 원권과 만 원권이 발행되면서 현재의 금액 단위가 갖춰진 시기다. 1972년 발행된 최초의 오천 원권은 앞면에 율곡 이이가 그려졌다. 만 원권의 도안은 석굴암 본존불상으로 정해졌으나 종교계(기독교)의 반발 때문에 1973년 세종대왕과 무궁화로 교체되어 발행되었다..

 

지폐 속 도안을 결정하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무엇보다 화폐도안의 인물은 업적과 품성이 위대하여 많은 국민들로부터 존경의 대상이 되어야 하며 오랜 세대에 걸친 충분한 역사적 검증을 거치는 과정에서 논란의 소지가 없어야 한다. 더욱이 발권당국인 중앙은행에서 이러한 여러 가지 요인을 고려하여 선정한 인물이라 하더라도 정치적, 종교적 이유로 화폐를 직접 사용하는 국민들로부터 거부감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되어야 한다.  

 

도안 결정과 관련해 법으로 정해진 기준과 절차는 없지만, 대한민국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위인을 지폐 속 인물로 선정한다는 것이 한국은행 설명이다. 그래서 인물을 선정하는 절차는 한국은행 단독으로 진행하지 않는다.

 

역사계를 필두로 각계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위원회를 구성한 뒤, 국민을 대상으로 여론조사 등의 과정을 거쳐 인물을 선정한다. 지난 2007년 한국은행은 고액권 발행계획을 공표하고 고액권 초상 인물 선정을 위한 ‘화폐도안자문위원회’를 구성하기도 했다.

 

각계 전문가 8명과 한국은행 부총재, 발권국장 등 총 10명으로 구성된 위원회는 지폐에 들어갈 인물 후보로 20명을 추천했고, 성인 남녀 1000명과 각계 전문가 150명의 의견을 수렴해 후보를 10명으로 압축했다. 당시 후보에는 김구, 김정희, 신사임당, 안창호, 유관순, 장보고, 장영실, 정약용, 주시경, 한용운이 포함됐다.

 

논의 끝에 김구와 신사임당이 각각 10만원권과 5만원권 초상 인물로 선정됐다. 하지만 10만원권 발행이 정부의 요청으로 중단되면서 근현대사 인물이 우리나라 화폐에 들어가는 건 좌절됐다. 고액권 화폐를 발행하면 물가 상승 및 뇌물거래나 비자금 조성 등 불법적인 사용이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유관순 열사가 탈락한 이유에도 석연찮은 얘기들이 떠돈다. 여론조사에서 높은 순위를 기록했지만 정부가 한일관계 경색을 우려해 일부러 탈락시켰다는 소문이 그것이다. 여론 분열을 우려해 공청회를 거치지 않고 밀실 선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한국은행의 설명이다.

 

현존 지폐 속 인물들이 모두 조선시대 인물이고, 신사임당을 제외한 나머지가 모두 이씨 성을 가진 이유에 대해서도 다양성을 고려해 지폐 도안을 바꾸면 사회적 혼란을 부추길 수 있다는 첨언을 내놓는다. 한숨이 쉬어지는 대목이다. 혹여나 머지 않은 미래에 화폐 도안을 교체한다면 유로화처럼 논란의 여지가 없는 역사적 건축물로 바꿔봄이 어떨까?

 

<ansonny@reviewtimes.co.kr>

<저작권자 ⓒ리뷰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2 0
로그인 후 추천 또는 비추천하실 수 있습니다.
추천한 회원 보기
추천한 회원
profile_image 땡삐I리뷰어 profile_image 윤지상I기자
김우선I기자의 최신 기사

댓글목록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게시물 전체검색
다크모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