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리뷰] 아름다움 속에 감춰진 아픔, ‘제주 4.3’의 흔적을 좇아⑤ 선인장꽃이 아름다운 무명천 진아영 할머니 삶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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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타임스=라라 리뷰어]
6월, 제주 서쪽 월령리의 선인장 군락지는 노란 꽃 세상으로 변한다.
백년초 선인장꽃이다.
샛노랗고 탐스러운 선인장 꽃,
새까만 현무암 사이사이로 고개에 내밀면 짙은 코발트빛 바다와 어우러지며 묘한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산책로도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어 많은 관광객들도 자주 찾는다.
그런데 이곳엔 평생 제주 4.3의 흔적을 안고 살다 가신 할머니의 작은 삶터가 자리하고 있다.
무명천 할머니다.
할머니의 본명은 ‘진아영’이지만 제주 4.3 이후부터 무명천 할머니라 불렸다.
당시 턱에 총을 맞아 평생 무명천을 턱에 두르고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무려 55년의 세월이다.
진아영 할머니는 1914년생으로, 총상을 입은 건 서른 중반이었다.
1949년 1월, 한경면 판포리의 고향집 울담 밑에 있다가 토벌을 나온 경찰이 발사한 총탄에 턱을 맞고 쓰러지셨다 한다. 자신의 고향집 앞마당에서 아무런 이유 없이 총상을 입었지만 치료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했다 한다. 그때부터 할머니는 총상을 입은 턱에 하얀 무명천을 두르고 살아야 했다고.
턱에 입은 총상으로 인해 말도 제대로 하기 어려웠고, 음식을 씹기도 어려워 늘 위장병까지 달고 살았다니 그 삶이 얼마나 고단했을까 상상조차 쉽지 않다.
할머니의 고향은 판포리지만 월령리에 삶터가 있는 건 당시 사촌과 언니가 살던 집으로 이주해왔기 때문이다. 고향에 자신을 돌봐줄 사람이 없으니 사촌과 언니 곁으로 온 것이다.
살아계셨을 때는 약값을 벌기 위해 바다에서 보말을 잡고 톳과 파래를 채취해 1시간을 가야 하는 오일장까지 가서 팔았다 한다.
2004년 9월 8일, 91세로 한 많은 삶을 마감하기 전, 2년 5개월 간은 성이시돌 요양원에서 지내셨다고.
남겨진 자손도 없어 지금의 할머니 삶터는 '무명천 진아영할머니 삶터보존회'에서 관리하고 있다.
역사의 아픔이 담긴 기구한 이름 '무명천 할머니’
할머니가 사셨던 공간으로 들어가니 ‘정말 작은 집’이란 게 생생하게 느껴진다.
언뜻 보기에도 30평이 채 안 돼 보이는 작은 땅에 덩그러니 자리한 집 한 채.
큰 방의 한쪽 벽면에는 할머니의 젊은 시절과 무명천을 두른 사진 등이 걸려 있고, 할머니가 쓰시던 이부자리며, 가재도구들도 그대로다.
이곳을 찾았을 때, 시간이 멈춘 달력은 2001년 1월을 가리키고 있었다.
'제주4·3'은 1979년 소설 '순이삼촌'으로 세상에 드러났지만, 그리고 나서도 꽤 오랫동안 '4·3'에 관해 얘기는 입 밖으로 꺼내는 것조차 금기였다.
할머니는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 아픔을 혼자 삭여야만 했다는 얘기다.
무명천 진아영할머니 삶터보존회'가 할머니의 삶터를 관리하는 건 이 공간을 생전의 모습 그대로 보존하고 관리하는 측면도 있지만, 제주4·3과 평화·인권의 가치를 함께 나누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소박한 삶을 살았던 할머니의 작은 공간...
할머니 그 자신이 제주4·3의 역사가 돼버린 작은 공간...
선인장꽃을 즐기려 월령리 바다를 찾는다면 조금 더 시간을 내 마을 안길을 산책하며 할머니의 삶터도 돌아보면 좋을 것 같다.
<lala_dimanch@hanmail.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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