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 칼럼] <경월 소주>에서 <처음처럼>, <새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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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타임스=김우선 기자] ‘술에는 장사가 없다’고 했다. 다행히도 건강검진을 해보면 조상 덕인지 아니면 하늘이 내려준 축복인지 내 간은 ‘아직까지는’ 쌩쌩하다. 그럼에도 술을 자제해야겠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술을 자주 마시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술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그렇다고 술을 싫어하지도 않으니 좋아하는 거 아니냐고 해도 뭐라 반박할 근거는 없다. 엄밀히 따진다면 술보다는 술자리를 좋아한다고 하는 게 더 나은 표현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난 술 맛을 잘 모른다. 내 싼 입맛엔 그 소주가 그 소주고, 그 막걸리가 그 막걸리일 뿐이다. 다만 특정 술 브랜드는 가려먹는 편이다. 정치적인 이유, 혹은 개인적인 편견 때문에.
최근 어느 술자리에서 <새로>라는 소주를 마셔볼 기회가 있었다. 그 소주 회사를 싫어하는 탓에 별로 내키진 않았지만 무가당 제로 슈거 소주라는 마케팅에 속는 셈치고 한 번 마셔보기로 했다. 소주 리뷰는 다음 기회에 쓰기로 하고 왜 롯데가 16년만에 <새로>운 소주 브랜드를 내놓았는지 톺아보기로 한다.
내 기억 속 <처음처럼>
<처음처럼> 소주의 역사는 9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무위키에 따르면, 1926년 설립된 강릉합동주조가 그 시초다. 여기서 만든 소주가 경월 소주였다. 지역소주로 출발했던 경월 소주는 강원도에서 80% 이상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급성장했다. 1993년 두산그룹에 인수되면서 두산 경월로 이름을 바꿨고 소주 업계 최초로 녹색 소주병을 도입한 ‘그린 소주’를 출시하면서 전국 브랜드로 거듭났다.
누구나 첫 사랑에 대한 기억은 오래 기억되듯이 내 머릿 속 젊은 시절 소주의 기억은 경월 소주가 9할을 차지한다. 당시 소주는 알코올 도수 25도가 국룰이었다. 한 잔을 원샷하면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찌릿함과 함께 알코올 향이 목구멍과 코로 빠져 나오면서 무방비 상태의 뇌를 툭 건드리는 알싸함이 있었다. 그랬던 소주의 25도 등식이 깨진 건 1998년 참이슬이 출시되면서부터다. 23도로 떨어진 도수는 이후 주식 하락장처럼 떨어지기 시작해 지금은 무맹맹한-그렇다고 안 취하는 건 아니다. 어느 노래 가사처럼 취하는 건 마찬가지- 16도까지 떨어진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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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월 소주가 그린 소주로 바뀌었다가 현재의 <처음처럼>으로 안착한 건 2006년부터다. <처음처럼>이 내세웠던 건 알칼리 환원수를 사용했다는 거였다. 알칼리 환원수 덕분에 물 속 유해성분이 제거되고 미네랄도 풍부해져 술 맛이 더 부드럽고 목 넘김이 좋다는 게 출시 당시 열렬히 홍보했던 소위 물 마케팅이었다.
확인할 수는 없지만 청정수를 채취한 후, 자체적으로 개발한 이온교환막을 통해 산성수와 알칼리수를 분리하고 양극측에서 생성된 산성수는 버리고, 음극측에서 생성된 알칼리수를 다시 여과하고, 정제한단다. 이 과정을 '알칼리 환원공정'이라고 하는데 이때 알칼리수는 미네랄이 분리되어 육각수가 되고, 물이 분리되어 활성 수소가 나온다. 이러한 공정을 거친 알칼리수로 <처음처럼>을 만들었다는 거다.
경월 소주에 익숙했던 덕분인지 그때부터 <처음처럼>을 마셨던 듯하다. <처음처럼>에 꽂힌 또 다른 이유는 병에 새겨진 신영복 교수의 수필집 ‘처음처럼’에서 따온 글귀도 한 몫 했다. 당시 크로스포인트의 대표였던 손혜원(전 민주당 국회의원) 씨가 그린소주의 리뉴얼을 준비하고 있던 두산에 <처음처럼>이라는 브랜드명을 제안하면서 “처음처럼 목넘김이 좋다”는 의미로 <처음처럼>을 브랜드명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신영복 교수는 자신의 글귀를 돈을 받고 팔 수 없다고 어떤 사례도 거절해 로고 서체 사용료 1억 원은 재직하고 있던 성공회대학교에 장학금으로 기부됐다.
이때 나왔던 유행 중 하나가 ‘회오리처럼 흔들어 마시는’ 거였다. 가수 이효리를 모델로 ‘흔들어라 캠페인’을 전개하며 흔들수록 순해지는 알칼리 환원수 소주의 특징을 전달해 일명 ‘회오리주’를 유행시켰다.
희석식 소주와 증류식 소주
소주를 논할 때 희석식 소주와 증류식 소주를 빼놓을 수 없다. 소주는 원래 우리나라 대표 증류주였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녹색병에 든 대부분의 희석식 소주를 우리는 소주라 부른다. 희석식 소주는 사실 일본이 원조다. 1895년 일본에서 동아시아 최초로 주정을 개발, 생산하였고 1899년 희석식 소주를 개발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965년 1월에 보릿고개라고 불렀던 식량사정으로 인해 쌀로 술을 빚는 것을 금지한 양곡관리법이 반포되면서 희석식 소주가 대세가 된다. 막걸리나 증류식 소주를 비롯한 전통주는 대부분 쌀로 만들기 때문에, 먹는 쌀도 부족했던 당시에 대체제로 희석식 소주가 떠오르게 된 것이다. 쌀 대신 타피오카, 고구마 등 발효시킬 수 있는 재료를 값싸게 구해 맛과 향을 날려버린 후 물을 섞으면 소주가 됐기 때문이다. 이 법은 25년이 흐른 1990년에 와서야 개정되어 안동소주 등 증류식 소주의 판매가 허가되었다.
희석식 소주는 카사바라는 주원료를 발효해서 만든다. 카사바에서 뽑은 녹말로 타피오카라는 것을 만들고 이것을 발효시켜 연속식 증류기에서 증류한 고순도 주정(알코올, 식용 에탄올)에 물을 타고 미원, 설탕 같은 화학 감미료를 첨가한 것이 희석식 소주다.
희석식 소주는 좋은 맛과 좋은 향이 있을 리 없다. 단지 취하기 위해서 마시는 술일 뿐이다. 그래서 술맛을 즐기는 애주가들은 희석식 소주를 식용알콜 화합물로 표현하기도 한다. 알코올 향이 역겨운 편인데 20도 수준으로 물을 타서 희석하고, 그걸 가리기 위해 자일리톨 껌 맛이 나는 화학감미료를 섞는다. 그래서 소주는 천천히 마실수록 쓴 맛이 나고 역한 느낌이 든다. 희석식 소주를 음미하지 않고 한 번에 털어넣는 원샷으로 마셔야 하는 건 이 같은 이유에서다. 소주에 맥주를 섞어 마시는 소맥이 유행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한 마디로 소주는 마시기 고약한 술이다.
여기서 사람들이 잘 모르는 한 가지가 있다. 우리나라에는 풍국주정, 진로발효 등 10개의 주정회사가 있는데 이 회사들이 지분을 참여해 대한주정판매라는 독점회사가 각 주정업체에서 만든 알코올(주정)을 일괄적으로 구매해 각 소주업체에 판매한다. 희석식 소주는 모두 다 같은 주정을 사용하는 것이다. 원료가 똑같다는 얘기다. 그러면 하이트진로, 롯데칠성, 대선, 보해양조 같은 소주회사에서 주정을 사와서 물을 타고, 감미료를 넣고 자기들만의 도수를 만든 후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것이다. 각 소주마다 맛 차이가 나는 건 어떤 첨가물을 쓰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맛 차이라고 썼지만 맛이라고 얘기하는 거 자체가 사실은 억지스럽다.
무가당 소주 <새로>는 무슨 맛?
10여년간 <처음처럼>만 마시던 나는 <진로이즈백>이 나오면서부터 갈아탔다. 왜 안마시게 됐냐고? 롯데라는 회사가 싫어진 것 외에 다른 이유는 없다. 어차피 똑 같은 소주이니 말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롯데칠성음료가 2006년 <처음처럼>을 출시한 이후16년만에 새로운 브랜드 <새로>를 내놨다. 기존 소주 제품들과 다르게 과당을 사용하지 않은 제로 슈거 소주라는 점을 강조한다.
MZ세대의 새로운 음주 문화인 ‘헬시 플레저(healthy pleasure)’를 반영해 과당류를 빼버린 제로 슈거 소주 <새로>에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출시 5개월만에 5천만 병을 돌파했다는 기사를 보면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데는 성공한 듯 보인다.
소주 음주 리뷰는 나중에 다시 하겠지만 두 병 마셔본 소감을 스포하자면 ‘슈거를 넣지 않은 대신 다른 감미료를 왕창 집어넣은 느낌’이다. 기존 처음처럼에 설탕 대신 쓴다는 스테비아를 부은 맛? 그래서 달짝지근하고 소주의 역한 원래 향은 좀 덜 느껴진다. 아마도 여성 고객들을 배려한 소주라고 하는 게 맞을 듯하다.
<ansonny@review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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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3
안병도I기자님의 댓글
MRMI리뷰어님의 댓글
그래서 제주 한라산 소주가 삼다수와 같은 화산암반수와 증류식 소주 원액을 조금 섞어서 맛있다는 이야기도 있구요. 한라산 소주는 순한 맛은 17도 오리지널은 21도 인데, 이상하게 한라산은 도수가 높은 오리지널이 맛난거 같아요. 갑자지 한라산 소주가 급 땡기네요. 다음엔 한라산 소주 리뷰해주세요. ㅎㅎ
김우선I기자님의 댓글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