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칼럼] 기시다 총리 만찬주로 왜 ‘경주법주’를 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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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타임스=김우선 기자] “쌀 표면을 79%까지 깎아내 더욱 깨끗하고 부드러우며, 우리 청주 가운데 최고로 손꼽히는 천년고도의 명주.”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지난 7일 정상회담을 마치고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서 만찬을 할 때 윤 대통령이 식탁에 오른 술을 소개하며 한 말이라고 모 일간지가 소개했다.
일본 총리의 방한 기념 만찬 자리에 낸 술은 '경주법주 초특선'이었다. 경주법주 초특선은 쌀 표면을 79%까지 깎아내 담근 술로 깨끗하고 부드러우며, 우리 청주 가운데 손꼽히는 명주로 알려져 있다고 극찬했다.
엄밀히 말해 경주법주 초특선은 일본식 청주(세이슈)다. 현재 국내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주세법상 청주'는 모두 일본식 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제시대에 유래한, 쌀알에 누룩곰팡이를 접종해 만든 가루누룩, 즉 입국과 정제효모를 사용해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 선조들이 몇 천 년에 걸쳐 만들어 먹던 맑은 술, '청주'는 사실상 없다. 일제 강점기 시절 조선 땅에서 술과 관련된 세금을 좀 더 잘 뜯어 가고, 술 만드는 일본인 사업가들이 잘 정착할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해 1916년에 주세령(밀주조금지법)을 공포하면서, 조선의 '재래방법'으로 만드는 술은 '청주'라는 이름을 쓸 수 없도록 해버렸기 때문이다. 그 주세령은 미군정,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에 계승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경주법주는 원래 따로 있었다. 국가무형문화재 ‘86-3’호로 지정되어 있는 '경주교동법주'가 그것이다. 경주교동법주는 경주 최씨 집안 가문에서 대대로 만들어 온 가양주로 이것을 '경주법주'라고 불렀다. 조선 숙종 때 임금을 위한 요리를 만들고 술을 빚는 사옹원의 관리를 지낸 최국선이 궁중에서 임금이 마시는 곡주의 제조법을 집안의 아낙네들에게 가르친 것이 그 시초로 알려져 있다. 그렇게 전통을 이어져 오던 것이 박정희 시절에 무참히 짓밟히고 말았다.
당시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면서 우리나라에는 당시 극동 담당자였던 미셜 그린 차관보를 파견했는데 한국에 오기 전 중국에 들른 그린 차관보는 중국 대표 술인 마오타이주(茅台酒)를 맛보고 그윽한 향과 맛에 깊은 인상을 받아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한국에도 그런 술이 있는지 물어봤지만, 박 전 대통령은 자신 있게 답하지 못했다. 박 전 대통령 집권 후 1965년 양곡관리법을 통해 쌀로 술을 담그지 못하게 하면서 전통주 명맥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망신을 당한 박 전 대통령이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술을 개발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이때 선택된 술이 경주법주였다. 양곡관리법이 있었지만 경주법주에 대해서만큼은 특혜를 베풀기로 했다. 단, 대량생산을 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경주 지방에서 오랜 세월 경주법주를 만들어왔던 가문들은 대량생산을 할 능력이 없었고 결국 대구경북 지역의 소주업체인 금복주에 경주법주 생산권한을 내주고 만다. 일부러 금복주에 특혜를 주기 위한 쇼였다는 설도 있다.
금복주는 일본식 세이슈 제법을 적극 도입해, 일본식 '경주법주'를 대량 생산해내기에 이르렀고, 아예 자회사를 따로 차려 '(주)경주법주'라고 이름 붙이고 그 상표권을 등록해 버렸다. 오랜 세월 경주법주를 만들어온 가문은 자신들의 술을 '경주법주'라고 부르는 것이 불법이 되어 버리는 순간이었다. 금복주는 이렇게 박정희 정권의 비호 아래, 금복주판 '경주법주'를 위한 특별히 제정된 세법의 혜택까지 받아가며 경북에서 승승장구하기에 이른다.
경주법주가 다시 부활한 것은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앞두고 실시된, 1986년의 '향토술 담그기'에서 국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다. 최씨 문중의 경주법주가 면천두견주, 문배주와 함께 국가 무형문화재 전통주 부문에 등재됐다. 하지만 금복주가 차지해버린 상표권 분쟁을 피하기 위해 경주법주가 아닌 경주교동법주로 바꿔야 했다.
금복주의 경주법주가 결코 좋지 않은 술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경주법주 초특선은 우리 전통의 청주가 아닌 일본의 다이긴죠급 세이슈에 도전장을 내민 한국판 세이슈일 뿐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
정상회담장에 내는 술은 뭐니해도 그 나라를 대표하는 술이어야 한다. 경주법주가 신라시대 화랑들이 마시던 술이라는 표현도 역사적 근거가 없는 마케팅의 일환일 뿐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막걸리를 냈으면 더 좋았겠지만 기왕에 청주를 낼 참이었으면 금복주의 경주법주가 아닌 경주교동법주를 냈어야 했다.
<ansonny@review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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