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3000년의 기다림>, 인류의 이야기가 닿는 곳은 결국 ‘사랑’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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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 4 오스트레일리아 108분
감독 : 조지 밀러
출연 : 틸다 스윈튼, 이드리스 엘바
줄거리 : 세상 모든 이야기에 통달한 서사학자 알리테아(틸다 스윈튼)가 우연히 소원을 이뤄주는 정령 지니(이드리스 엘바)를 깨워낸다. 그녀에게 주어진 기회는 단 세 번. 마음속 가장 깊은 곳, 가장 오랫동안 바라온 소원을 말할 것!
작품 설명만 보면 <알라딘>을 떠올리게 되는데, 영화를 보는 내내 인간이 품고 살아가게 될 각자의 이야기가 궁금해지고 귀기울이게 된다. 마침내 그 끝에 다다르게 된 ‘사랑’에 미소짓고 가슴 아파지는 영화였다.
알리테아는 지니에게 3000년 동안이나 병에 갇힌 이유를 물었다. 정령이지만 어리석고, 여인들과의 대화를 좋아한다던 지니는 “갈망 때문이지 뭐가 있겠습니까?”라고 짧게 답한다.
그러나 남편으로부터 ‘당신은 감정을 읽는 능력이 없다’는 말을 들었던 알리테아는 그것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평생 한 가지의 소원조차 품기 어려운 그녀는 욕심 없는 경건한 사람 같기도, 자신의 욕망을 모르는 겁쟁이 같기도 하다.
지니는 그녀를 위해, 자신의 3000년의 갈망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랑하는 사람을 웃게 만들고 싶다는 아주 사소한 갈망에서부터 시작되는, 오직 사랑이 만든 전설 같은 러브스토리였다.
첫 번째는 시바 여왕. 그녀는 지니와 사랑을 나누던 관계를 뒤로 하고 솔로몬에게 마음을 빼앗기죠. 자신의 아름다움과 자존심의 상징인 다리털을 밀어버리기까지 하고, 지니는 솔로몬에 의해 호리병 속으로 갇히게 된다.
두 번째는 전쟁이 한창이었던 오스만 제국 시절 어느 나라의 시녀. 왕자 무스타파에게 반한 그녀가 그의 사랑을 얻고 아이까지 가지고 싶다는 세 번째 소원을 빌기도 전에 비극적인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세 번째는 영특한 한 소녀와의 만남인데, 지니와의 만남으로 세상의 모든 지식을 활용해 상상력을 펼치게 된다. 하지만 그녀를 사랑하게 된 지니의 모습에 겁을 먹은 소녀의 마지막 소원으로 다시금 병에 갇히게 된다.
지니의 모든 이야기가 끝난 후, 알리테아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튀어나온다. 당신을 사랑하게 됐고, 당신도 나를 사랑해 줬으면 한다고. 지니의 진심 어린 이야기에 알리테아의 마음이 움직였고, “우리의 고독이 하나가 됐으면 해요”라는 소원 같은 고백을 건넨다.
<설국열차>에서 보여준 다소 우스꽝스러운 모습의 틸다 스윈트를 기억할까. 그 전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마담 D를 기억할까. 어디에서든 신비롭고 선 굵은 연기와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그녀는 변신의 귀재답게 <닥터 스트레인지>에서는 민머리에 동양적인 의상을 입은 닥터 스트레인지의 스승이며 미스틱 아츠의 대가로 분한다.
<3000년의 기다림>은 뭔가 신비롭고 영적인 기운이 느껴지는 틸다 스윈튼이 제대로 짝을 만나는 영화다. 그리고 그 동안 작품에서 잘 드러내지 않던 그녀의 미모를 한껏 뽐내며 사랑의 감정에 몰입하게 했다.
유대교 전설 속 시바 여왕과 솔로몬 왕, 고대 오스만제국의 신화 등을 배경으로 한번쯤 들어봄직한 이야기들이 시간과 장르를 초월해 흥미진진하게 엮어진다.
스토리텔링이 가진 무한한 마법 같은 이야기를 압도적인 비주얼로 펼쳐놓았다. 쨍한 색감과 시대를 대변하는 서사를 녹여낸 영상미가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알리테아는 서사학자답게 정령이 품은 스토리를 사랑하게 된 게 분명해 보인다. 뼈 속까지 스토리에 반응하는 서사학자 앞에 나타난 정령은 정말 그녀를 사랑했을까. 가끔 잊지 않고 그녀의 삶 속으로 들어오는 걸 보면 의심의 여지는 없어 보인다. 3000년의 기다림이 아깝지 않은 사랑이었으면 한다.
결국 인류의 서사는 사랑으로 귀결되는 것 같다. 그래서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것일 게다. 그리고 그 사랑은 서로를 속박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고 영화는 얘기하고 있다.
알리테이의 세 가지 소원을 보면 명확해진다. 첫 번째는 지니와 서로 사랑하게 되는 것. 두 번째는 죽어가는 지니가 왜 그런지 알아내는 것, 세 번째는 지니를 정령의 세상으로 돌려보내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별을 맞이하지만 3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지니와의 만남은 알리테이에게 ‘이보다 좋을 수 없는 사랑’임이 보여진다.
“우리의 고독이 하나가 되었으면 해요.”
라는 대사처럼 서로의 모든 것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으니까.
<tomyif@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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