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리뷰] 서귀포 건축투어_③ 제주의 대표적인 근대 건축가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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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 6코스를 정방향으로 걸으면, 왼쪽으로 바다와 섶섬을 끼고 걷는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서귀포 KAL호텔의 아담한 정원이 눈앞에 펼쳐지고, 정원을 지나면 잠시 바다로 내려갔다가 90년대 제주도 신혼여행 커플의 필수코스였다는 허니문하우스가 나타난다. 뷰맛집이란 명성답게 절벽 너머로 시원하게 바다가 펼쳐지는 허니문하우스, 사실 이쯤 이르면 6코스의 끝 지점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또 다른 풍광을 기대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하지만, 여름철 물맞이 명소인 소정방폭포를 돌아나오면 그냥 지나치기 아까운 멋진 건물이 하나 기다리고 있다. 현재 서귀포시가 북카페로 운영 중인 ‘소라의성’이다. 소라의 성은 1969년 준공 이후 50여년이 넘는 세월을 겪으며 적지 않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음식점으로 운영되기도 했었고, 한때는 (사)제주올레가 사무실로 쓰기도 했으며, 최근 몇 년 동안은 안전문제 등으로 인해 아예 비어있기도 했다. 하지만 몇 해 전부터 서귀포시가 직접 관여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소라의 성’이 한국의 1세대 건축 거장인 고(故) 김중업의 작품으로 알려진 때문이다.
김중업 건축가와 더불어 제주도에서는 김태식, 김한섭 등이 근대건축을 대표하는 인물들로 꼽히는데, 안타깝게도 남아있는 작품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번 [서귀포 건축투어 3편]에서는 제주도의 대표적인 근대 건축가 3인의 이야기와 해방 전후로 제주도에 지어진 작품들을 돌아봤다.
① 제주 대표 건축가, 3인 3색...김중업, 김태식, 김한섭
한국의 근·현대 건축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1945년 8월 17일 전국공업기술협의회가 창립되면서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같은 해 8월 25일 건축협의회가, 9월 1일 조선건축기술단이, 이어 12월 조선건축사회가 창립되는 등 해방 원년부터 건축계는 왕성하게 활동하기 시작했다. 당시 건축계를 주도한 그룹은 일제강점기에 전문적인 건축 교육을 받았던 이들로, 국내파는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학과 출신들이, 국외파는 일본에서 유학하며 체계적인 건축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이끌었다. 대부분의 건축가들이 서울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활동했지만 제주도에서 활동한 근대 건축가들도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꼽히는 인물이 김태식 건축가다. 김태식 건축가는 1941년 일본대학 전문부 건축학과를 졸업한 국외파로, 1950년대와 1960년대에 가장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제주도에서는 제주관광호텔(1962년)과 제주시민회관(1964년)이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제주관광호텔은 근대 건축의 거장인 르 꼬르뷔지에의 근대건축 5원칙(자유로운 입면과 평면, 연속적인 창, 옥상정원, 필로티)을 연상시키는 수평적인 연속창과 수직적인 요소의 굴뚝, 매스의 분절과 도출, 정면 파사드 등 김태식 고유의 건축미가 잘 드러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여러 차례 명칭이 바뀌었고, 2022년부터는 제주하니크라운호텔이란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건물 역시 명칭 변경과 더불어 그 형태가 조금씩 바뀌었다.
그의 또 다른 대표작인 제주시민회관은 제주시에서 가장 오래된 문화시설로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제주의 지역 문화예술 거점으로 역할해온 건물이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제주의 문화예술 거점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자 주 기능이 상실되면서 2023년 결국 철거되고 말았다.
제주관광호텔은 제주도 내 최초의 관광호텔이자 민간 투자라는 점에서, 그리고 제주시민회관은 제주 최초의 철골조 건축물이라는 점에서 건축 측면에서 충분한 상징성이 있고, 역사적으로도 상당한 의미를 갖고 있지만 지금은 그 흔적만 어렴풋이 남아있을 뿐이다.
김한섭(1920~1990) 건축가는 제주시 화북동 ‘벨도’에서 태어난 제주 출신이지만 주로 활동한 곳은 전남 지역이다. 1939년 일본대학 부설 고공 건축과를 졸업한 후 전남에서 활동하며 전남 지역 건축계의 선구자로 역할했다. 1952년 일본대학 공학부 마츠이 연구실에서 연구생활을 한 후 귀국해서는 광주와 서울에서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다. 그래서 광주의 주요 건물은 대부분 그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제주에서는 제주교육대와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등을 설계한 것으로 전해진다.
제주대학교 옛 본관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로 유명한 김중업(1922~1988)은 1970년대와 1980년대에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으며, 김수근(1931~1986)과 더불어 한국 건축계 1세대를 대표하는 인물로 꼽힌다. 1922년 평양에서 태어나 요꼬하마(横浜)고등공업학교(현 요꼬하마국립대학)건축학과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1946년에는 단신으로 월남해 미군공사 설계를 맡기도 했다. 1952년에는 유네스코 주최로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열린 제1회 세계예술가회의에 한국대표로 참가, 세계적인 건축 거장인 르 꼬르뷔지에와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
이 만남 이후 김중업은 한국인 최초로 르 꼬르뷔지에 건축연구소에서 4년간 근무하며 실무 역량을 키울 수 있었다. 그래서 김중업의 건축은 초기 르 꼬르뷔지에의 건축 언어를 따르는 합리적·기능주의적 스타일의 작품과 여기에 한국적 미를 함께 담아내려는 후기 감성적 표현주의 스타일의 작품으로 나뉜다고 한다. 르 꼬르뷔지에의 영향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는 작품은 서강대 본관, 부산대 본관, 건국대 도서관 등이다.
그러나 주한 프랑스대사관을 설계할 시점부터는 한국적 미의 가치를 담아보려는 욕구가 강했다 한다. 프랑스대사관에 이어 1964년 준공된 제주대학교 옛 본관은 르 꼬르뷔지에의 규칙과 방법을 한국적 정서, 특히 제주라는 지역적 조건에 맞춘 공간성과 장소성이 어우러진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그러나 이 건물은 현재 남아 있지 않다. 1990년대 들어 끊임없이 안전성 문제가 불거지자 여러 논란 끝에 결국 1996년 철거된 것이다. 제주대 옛 본관은 사라졌지만 서귀중앙여중(당시 제주대 수산학부)과 농학부 도서관은 현재 김중업의 작품으로 남아 있다. 제주대 옛 본관과 관련해서는 ‘김중업 선생의 대표작이자, 제주대학교가 국립대학으로 승격하던 첫 해 사업으로 추진된, 제주대의 상징과도 같은 건물’이라는 점에서 현재 ‘제주대 옛 본관’ 재현 관련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② 단순하면서도 곡선미가 아름다운 ‘소라의 성’
단순하면서도 곡선이 갖는 아름다운 미적 요소가 돋보이는 건축물로 평가받는 ‘소라의성’은 김중업 작품집에 소개된 적이 없다는 이유 때문에 여전히 ‘김중업’의 작품인지 여부가 명확히 가려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몇 가지 특성을 볼 때 그의 작품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제주 건축계의 전반적인 견해다.
첫째는 입면에서 적용되고 있는 곡선의 처리방법이 제주대학 옛 본관과 같은 초기작품에서 구사한 곡선과 유사하다는 점, 둘째는 농학부 본관이나 농학부 도서관의 사례처럼 잘 다듬어진 제주석을 쌓는 기법을 적용했다는 점,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벽체 구조물이 내부 공간 안쪽으로 파고드는 공간처리기법을 적용하고 있다는 점 등에서다.
단조로운 원형 공간 속 작은 원형, 그리고 변형된 타원체는 내부 공간을 역동적으로 보이게 하며, 곡선과 직선 요소가 잘 어우러져 4면이 각각 다른 표정을 보여준다. 건물 바로 앞은 급경사의 절벽으로 2층에선 서귀포 앞바다를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다.
소라의성을 꼼꼼히 둘러보며 르 꼬르뷔지에의 건축미를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소라의성>
- 운영시간 : 09:00~18:00 (매주 월요일 휴무) / 무료개방
- 위치 : 제주 서귀포시 동홍동 234-2
③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이색 건축물 '성이시돌목장 테쉬폰'
한림읍 금악리의 테쉬폰은 제주도에서만 유일하게 볼 수 있는 이색 건축물이다.
테쉬폰(Ctesiphon)은 건축양식의 하나로, 1884년 호주에서 태어난 엔지니어인 ‘James Waller(제임스 월러)’가 1922년 이라크 티크리스 강 인근의 고대도시 유적인 '테쉬폰(Ctesiphon)'을 방문했다가 영감을 얻은 후 창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국내에서는 아일랜드 출신인 ‘맥그린치(한국명 임피제)’ 신부가 1954년 제주로 오면서 목장 숙소로 사용하기 위해 처음 지었으며, 이후 돈사, 사료공장, 성당으로도 활용됐다. 1960년대에는 대한주택공사가 주택난을 해결하기 위해 다른 지역에도 테쉬폰 건축물 보급을 시도했다는데 현재 테쉬폰이 남아있는 곳은 제주가 유일하다.
임피제 신부가 테쉬폰을 짓기 시작한 건 1961년으로, 전쟁 후 폐허나 다름없던 제주의 가난한 농부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테쉬폰은 내부에 기둥이 없어 시공이 빠르고 자재비를 절약할 수 있는데다, 건물의 형태가 아치형이고 지붕은 곡선 형태라 바람이 강한 제주에 적합한 건축물이었다. 현재는 거의 외관의 형태만 뚜렷하게 남아 있지만 방과 작은 거실, 부엌, 그리고 수세식 화장실을 모두 갖춘 원룸형 주택 스타일이라 한다.
성이시돌 목장은 전형적인 제주 목장으로, 현재 무항생제 소고기와 유기농 우유를 생산하고 있다. 목장 앞 카페 ‘우유부단’에서는 이곳에서 생산된 우유로 만든 아이스크림, 커피 등을 판매한다.
<테쉬폰>
- 위치 :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 135
- 카페 우유부단 : 10:00~18:00
④ 현무암 벽체의 단순미, 남제주군 강병대교회
남제주군 강병대교회는 한국전쟁 직후인 1952년에 세워진 교회다. 유명 건축가의 멋진 작품은 아니지만 몇 가지 이유에서 제주 건축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첫째, 민간 건축 전문가가 아닌 공병대(군에서 축성, 가교 건설, 측량, 폭파 따위의 임무를 맡고 있는 부대)가 건축했다는 점, 둘째, 건물의 절반 이상이 원형 그대로 남아있다는 점, 마지막으로 세번째는 제주 현무암으로 벽체를 쌓아 제주스러움이 고스란히 묻어난다는 점에서다. 강병대교회는 현재 등록문화재 제38호로 지정돼 있다. 남제주군이란 명칭은 강병대교회가 지어질 당시의 행정구역명으로 대정읍 지역 인근을 포괄한다.
강병대교회는 현무암 벽체로 쌓은 단순한 구조를 띠고 있다. 현무암으로 벽체를 쌓고 목조 트러스(직선으로 된 여러 개의 뼈대 재료를 삼각형 또는 오각형으로 얽어 짜서 지붕이나 교량 따위의 도리로 쓰는 구조물) 위에 함석(표면에 아연을 도금한 얇은 철판) 지붕을 씌운 간단한 형태다. 당시 군에서 축성, 가교 건설, 측량, 폭파 따위의 임무를 맡고 있는 부대인 공병대가 ‘한국전쟁 직후 훈련병들의 정신력을 강화하기 위해’ 설립한 교회다.
대구에 있던 훈련소가 제주로 이전해 오면서 1952년 모슬포에 육군 제1훈련소가 설치되자 이곳에서 훈련받은 군인들이 전선으로 떠나기 전 마음의 안정을 찾고 고향에 두고 온 부모와 가족의 안녕을 빌 수 있도록 세운 것이다. 전쟁 이후 1965년에 공군이 인수해 이듬해부터는 지역 주민을 위한 야간 중학교를 설립해 14회 동안 20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기도 했다 한다.
이곳에선 지금도 매주 예배를 드리고 있다. 여행자뿐 아니라 원하면 누구나 예배에 참여할 수 있다.
<남제주군 강병대교회>
- 예배 시간 : 주일 예배 오전 11시, 수요 예배 오후 7시
- 위치 :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대서로 43-3
<lala_dimanc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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