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앙; 단팥 인생 이야기>, 삶의 의미를 만드는 어른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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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작, 일본, 113분
감독 : 가와세 나오미
출연 : 키키 키린, 나가세 마사토시, 우치다 카라
줄거리 : 납작하게 구운 반죽 사이에 팥소를 넣어 만드는 전통 단팥빵 ‘도라야키’를 파는 작은 가게.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가게 주인 ‘센타로’에게 ‘도쿠에’라는 할머니가 찾아온다. ‘마음을 담아’ 만든다는 할머니의 단팥 덕에 ‘도라야키’는 날로 인기를 얻고 가게 주인 ‘센타로’의 얼굴도 밝아진다. 하지만 단골 소녀의 실수로 할머니의 비밀이 밝혀지면서 예상치 못한 이별의 순간이 찾아오는데… “당신에게는, 아직 못다 한 일이 남아 있습니까”
[리뷰타임스=땡삐 리뷰어]
일본 영화 특유의 감성이 가끔 그리울 때가 있다. 그래서 찾아본 영화였고, 키키 키린의 영화를 골랐다. 그녀의 연기를 많이 보지는 않았지만, 일본의 어느 집에나 있을 것 같은 그녀의 얼굴이 마음을 편안하게 하기 때문이다. 어느 영화에서 한 번쯤 봤던 배우들과 내게는 조금 낯선 그러나 나와 같은 연배의 여성 감독이 만든 작품이었다. 낯선 감독이 궁금해서 보기로 했는지도 모른다.
우선, 키키 키린은 호들갑스럽지 않으면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배우다. 이 영화에서도 그녀는 ‘정말 연기일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연스럽게 도쿠에가 되어 있었다. 웃음 한 점, 표정 한 편, 말 한마디, 발걸음 하나까지 왜 그녀가 그럴 수밖에 없는지 영화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팥소를 만드는 장인이 아니라 자연의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삶을 기다릴 줄 아는 그녀의 이야기였고, 그녀가 만들어간 삶의 의미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토록 도라야끼 가게에서 일하기를 원했으면서도, 본인의 팥소를 자랑하지도 자만하지도 않는 모습, 팥소를 맛봤다는 주인의 말에 뛸 듯이 기뻐하는 모습, 마침내 함께 일하자는 제안에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좋아하고 수줍어하는 모습, 그리고 마지막 인사를 할 때 정갈하게 숙여지는 고개와 허리까지 그녀의 모든 것에는 정성과 진심이 배어 있었다. 삶과 자연을 대하는 그녀의 태도를 예외없이 볼 수 있었다.
몸은 격리되어 갇혀 살았지만 마음만은 늘 자유롭게 펼쳐져 있던 도쿠에, 마침내 세상으로의 외출을 시도하고, 공간이 아니라 마음 속에 갇혀 있는 주변 사람들에게 그녀가 건네는 말은 스크린 밖으로 뛰쳐나와 관객까지 위로하고 있었다. 우리 모두는 어떤 의미에서든 격리되어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러 장면 중에서 내게 스치듯 그렇지만 깊게 들어온 장면이 있었다. 여학생들이 ‘인수 분해’를 왜 배우는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하는 장면이다. 생활밀착형 장면이라고 할까. 그리고 아들이 생각났던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에서다. 덧셈, 뺄셈 등 사칙연산 외에 인수분해, 삼각함수를 왜 배워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아들의 말, 결국 시험을 위한 것이라는 말이 머리를 스쳤기 때문이다. 도쿠에의 답변, “그럼 너희가 학교를 재미나게 바꿔봐. 하루 정도 가출을 해 보던지.” 그녀의 말에 여학생들은 이미 현실의 답을 알고 있는 듯했다. 그녀는 현명하게 삶을 바꾸고 스스로 결정하게끔 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진짜 어른인 것이다. 내 맘대로 감독의 의도가 돋보이는 섬세한 장면이라 칭하고 싶다.
영화를 보는 내내 세월을 따라 삶의 굴곡과 자세에 맞춰 내면의 단단함이 켜켜이 쌓여있는 모습에 공감하게 되고 가슴 뭉클해졌다. 나는 선뜻 하지 못하지만 그래서 더 마음에 닿는 말들이 스크린 속에 담겨 있었다.
“우리는 이 세상을 보기 위해서 듣기 위해서 태어났어.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아. 우리 모두는 살아갈 의미가 있는 존재들이거든”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 우린 자유로운 존재니깐…
이 대사가 묵직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삶의 의미를 발견하기 보다 본인이 만들어가려고 하는 이야기라 더 좋았다. 도쿠에가 센터로에게 팥소 만드는 법을 알려준 이유를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있던데, 도쿠에는 스스로 삶의 의미를 만들고 세워간 것이라 생각된다. 삶을 어떻게 소중하게 가꿔가야 하는지 그 방법을 요양원 밖 세상에 말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도쿠에가 팥소에 마음을 담듯이 나의 하루 하루에도 마음을 담아야겠다는 상투적인 생각도 하게 되고, 도쿠에가 달님과 얘기하고 나뭇잎과 인사하는 것처럼, 귀 기울여 듣고 유심히 관찰해 봐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된 시간이었다. 나의 하루가, 또 나의 삶이 무얼 말하고 싶어하는지 궁금해지는 영화다. 더불어 일본의 정서를 잘 보여준 벚꽃 영화이기도 했다. 내게는 <4월의 이야기> 이후 가장 멋진 벚꽃 영화로도 기억될 것 같다.
<tomyif@review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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