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올빼미>, 한 줄의 역사에 탄탄한 상상력이 스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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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타임스= 땡삐 리뷰어]
2022.11.23. 한국 118분
감독 : 안태진
출연 : 류준열, 유해진, 최무성, 김성철 등
줄거리 : 맹인이지만 뛰어난 침술 실력을 지닌 ‘경수’는 어의 ‘이형익’에게 그 재주를 인정받아 궁으로 들어간다. 그 무렵, 청에 인질로 끌려갔던 ‘소현세자’가 8년 만에 귀국하고, ‘인조’는 아들을 향한 반가움도 잠시 정체 모를 불안감에 휩싸인다. 그러던 어느 밤, 어둠 속에서는 희미하게 볼 수 있는 ‘경수’가 ‘소현세자’의 죽음을 목격하게 되고 진실을 알리려는 찰나 더 큰 비밀과 음모가 드러나며 목숨마저 위태로운 상황에 빠진다.
《인조실록》에는 종실 진원군 이세완의 아내가 세자의 염습에 참여했다가 사람들에게 말한 내용이 실려 있다.
“세자는 본국에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병을 얻었고 병이 난 지 수일 만에 죽었는데, 온 몸이 전부 검은 빛이었고 이목구비의 일곱 구멍에서는 모두 선혈이 흘러나오므로, 검은 멱목으로 그 얼굴 반쪽만 덮어 놓았으나, 곁에 있는 사람도 그 얼굴 빛을 분변할 수 없어서 마치 약물에 중독되어 죽은 사람과 같았다.”
— 《인조실록》 46권,
<조선왕조실록>에는 세자가 침을 맞았다, 정도로 넘어갈 만큼 상대적으로 가볍게 여긴 기존 증세가 한달 반 후, 급격히 악화되어 3일 만에 사망한 것이다.
반면, <승정원일기>에서 세자를 진료한 기록에 따르면 세자가 앓고 있던 병이 추론 가능한 병이며 사망에 이를 수 있는 병이라는 주장도 있다. 소현세자는 사망하기 몇 달 전부터 기침 증상을 앓아왔고, 이는 감기보다는 폐렴에 가깝다고 볼 수 있는다는 것. 또한 증상으로 보면 피부에 붉은색이나 보라색 출혈반이 생기는 혈관염으로도 추측된다.
이렇듯 여러 상황이 예상되며 17세기 의학의 한계로 기존 처방이 온전하지 않아, 잠복 중이던 병세가 급작스럽게 도진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인위적 개입의 의혹도 제기할 수 있다. 여기에 당시 소현세자를 정적으로 간주해 냉대하고, 소현세자가 죽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며느리와 손자들을 숙청했던, 인조의 사전 & 사후 행보가 의혹을 부추기고 있다.
영화<올빼미>는 이러한 역사 한 줄에서 힌트를 얻고 여러 가능성을 타진하고 상상력을 더해 한 편의이야기로 잘 엮어냈다. 그리고 여기에 배우들의 찰떡 같은 연기들이 더해져 눈 앞에서 벌어지는 하룻밤의 일인 양 현장감을 살렸다.
온갖 의문과 추측이 난무한 세자의 죽음을 목격한 이가 바로 맹인침술사라니. 게다가 그는 어둠 속에서만 비로소 희미하게나마 세상을 볼 수 있는 주맹증이라니. 이 얼마나 흥미진진한 설정인가.
실제로 소현세자는 청에서 돌아온 지 두 달 만에 학질로 세상을 떠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독살을 당했다는 이야기가 돌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소현세자가 죽고 4년이 지나 인조도 학질로 세상을 떠났다는 점, 이후 원손이 아닌 효종이 왕위에 올랐다는 점 등의 역사적 사실을 줄기로 하여 일명 ‘카더라’에 걸맞은 가지와 잎을 조화롭게 붙여 넣어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장르로 완성했다.
여기에는 유해진만이 넣을 수 있는 유머와 재치가 양념처럼 곁들여 영화에 감칠맛을 더한다. “독침을 흘려?”라는 한마디. 역사적 배경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뒷통수를 한 대 후려치지 않았을까. 그리고 소현세자에게 사용한 독침을 분실하는 바람에 사건의 증좌를 만들어주게 된 이형익을 인조의 후궁 소용 조씨가 닦달하는데… 이 장면에서 인조 유해진은 방 밖을 살피며 “다 들려, 다 들려! 다! 들! 려!”라고 소곤거린다. 긴장감이 넘치는 순간에 피로회복제처럼 끼워 넣은 이 장면은, “나 왕이지만, 유해진이야!”라고 말하고 있고, 결코 겉돌지 않고 스며들고 있다. 그게 연기력이고 연출력이 아닐까 싶다.
소현세자의 죽음을 목격한 목격자에서 인조 살인의 용의자가 되어 어두운 궁궐 안을 도망쳐 다니는 경수의 모습은 어둠과 빛의 조화로 만들어낸 미술과 긴장감 있는 음악이 더해져 영화로의 흡인력과 심장을 쫄깃하게 하는 긴장감을 극대화한다.
인조의 왼손 필체를 증거로 받아내기 위한 장면에서 보여지는 긴장감과 몰입감은 오롯이 유해진과 류준열의 팽팽한 연기가 만들어낸 장면이다. 얼마나 중요한 상황인지 알기에 필자도 대전 한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숨을 참으며 조용히 카메라 워킹을 따라가게 되더라.
보고도 못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하며 자신의 안위를 위해 묵인하는 사람들 속에서, 경수는 그렇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며 진실과 정의에 다가가려 애쓴다. 진실을 밝히려 하는 순간마다 경수의 앞을 가로막는 것은 눈을 멀게 하는 ‘밝음’이자, 검디 검은 ‘권력욕’이다. 경수는 대전에서 소현세자 죽음의 배후가 인조임을 확인하게 되고, 세자빈 강씨가 어떻게 누명을 쓰는지 듣게 되고, 소용 조씨와 이형익의 밀서 교환 장면을 보게 되고, 최대감과 인조가 어떻게 야합하는지도 목도하게 된다.
‘제가 다 보았습니다. 왕이 세자를 죽였습니다.” 맹인이 외치는 이 한마디는 그저 허망함이 되어 부서지고 말았을까. 그렇지 않았다. 어명을 따라야 하는 경수의 처형이 이뤄지지 않은 것은 물론 픽션이라 가능했겠지만, 작지만 희망을 보여주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소현세자 죽음 이후 4년 뒤 인조가 병에 걸려 죽음을 앞두고 있을 때, 경수가 침을 놓고 나오면서 죽음의 원인을 묻는 내관에게 “학질입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은 역사적 고증과 결합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마무리되었다고 본다. 맹인침술사의 나름 소심하지만 명쾌한 복수인 셈이다.
영화 전반을 흐르는 숨막히는 긴장감과 심장을 조여오는 스릴, 눈을 뗄 수 없는 짜임새 있는 서사와 함께 필자에게 길게 남는 여운은 소현세자가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전하는 엄중한 조언이다.
“안 보고 사는 게 몸에 좋다고 하여 눈을 감고 살면 되겠는가. 그럴수록 눈을 더 크게 뜨고 살아야지”
<tomyif@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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