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리뷰] 8월 폭염 속 연꽃에 파묻힌 조계사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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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조계사가 유명한 건 대한불교 조계종의 총본산이고, 서울 시내에 있는 대표적인 사찰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재력이 있는는 교인들이 많아 봉은사와 함께 시주가 가장 많이 들어오는 사찰로 알려져 있다. 내 사무실이 있는 경복궁역에서 지척의 거리에 있는 관계로 언제 한번 가 봐야지 생각만 하다가 땡볕의 무더위가 내리쬐던 어느 날, 광화문 부근에서 점심을 먹고 무심코 조계사로 발길을 옮겼다.
광화문 앞 세종대로 건널목을 건너면서 날도 더운데 괜히 왔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일단 가보는 거다. 주한 미대사관과 일본 대사관을 거쳐 조계사 바로 옆에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우체국인 우정총국 건물 앞에 다다르니 이미 와이셔츠는 땀에 젖어 흥건하다.
조계사는 다른 사찰에 비해 크지 않은 편이다. 시내 사대문 한복판에 있으니 확장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규모는 작지만 대웅전은 경복궁 근정전에 맞먹는 크기를 자랑한다고 한다. 도로 바로 옆에 '大韓佛敎總本山曹溪寺(대한불교 총본산 조계사)'이라고 적힌 현판이 걸린 거대한 일주문이 있다.
일주문을 지나자 깜찍한 하트 다리가 나온다. 얼마 전 칠월칠석 때 만들어 둔 다리인 듯하다. 하트 다리에는 자그마한 연등을 매달아 두었다. 이 다리로 지나가면 연인들의 사랑이 이루어질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이날은 가족 유대감을 강화하고 조상을 기리는 의미가 있다고 하는데 한편으로는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시점으로 여긴다고도 한다.
칠석날에는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기쁨의 눈물, 새벽에 헤어지면서 흘리는 이별의 눈물이라는 의미로 비가 자주 내린다고 하는데 과학적으로도 이 시기에 북서태평양의 해양 열대 공기가 남쪽으로 물러가고 대륙에서 차가운 공기가 형성되면서 구름대가 만들어져 비가 오는 확률이 높아진다고 하는데 올해 칠석날엔 비가 내리지 않았다.
일주문을 지나자 보이는 대웅전 옆으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커다란 백송이 있다. 수령이 500년이 넘었다고 하는데 대도시 한복판에 있어서 매연 때문인지 수령에 비해 나무 상태는 좀 앙상한 편이다. 나무 껍질이 벗겨져서 기둥이 흰빛이 돌아 백송이라고 불리는데 중국이 원산지로 조선시대에 중국을 왕래하던 사신들이 가져다 심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백송 앞으로는 복전함이 만들어져 사람들이 기도를 올리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점이 생길 수 있다. 조계사는 어떻게 사대문 안에 세워질 수 있었을까 하는 점이다. 조선왕조 내내 유교 성리학을 숭상하고 불교는 억제하는 숭유억불 정책으로 대부분의 절은 산 속 깊은 곳으로 추방되던 시기였으니 한양도성 사대문 안에 절이 생기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아니었을까?
기록상으로 조계사는 조선 태조 이성계 때인 1395년에 창건되었다고 나와있으나 실질적인 창건은 구한말 순종 시절 1910년으로 전해진다. 지금의 터 바로 옆에 각황사를 세웠는데 이 각황사가 조계사의 전신이다. 1930년 무렵 일제 강점기에 일본이 이토 히로부미를 위해 이등박문의 이름을 딴 사찰 박문사를 건축하고 불교의 총본산으로 하려하자 한용운을 비롯한 해인사 주지 스님 등이 주축이 되어 1937년 각황사 옆 자리에 새로 절을 건축하고 태고사로 이름을 짓고 조선불교 조계종 총본사 태고사법으로 인가를 받아 조선불교 조계종이 발족되었다.
이처럼 조계종이 한국 불교의 대표 사찰인 만큼 몇 가지 일화도 전해진다. 대표적인 것이 부처님 오신 날의 공휴일 지정이다. 정부에서는 공식 명칭으로 석가탄신일이라고 부르고 사철에서는 부처님 오신 날로 부른다. 예수 탄생일인 성탄절은 1949년 법정 공휴일로 지정됐다. 당시만 해도 불교신자가 엄청나게 더 많았지만 성탄절이 법정 공휴일이 된 건 당시 이승만 대통령과 영부인 프란체스카 여사가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기 때문이었다. 반면 부처님 오신 날은 1975년 되어서야 공휴일로 지정됐다. 불교 신자들은 끊임없이 성탄절 공휴일 지정이 위헌이라고 행정소송을 제기했는데 패소했다. 그러다 가장 영향력이 있는 조계사 신도들이 성탄절도 공휴일에서 빼버리면 받아들이겠다고 강력히 주장해서 마침내 1975년 부처님 오신 날도 공휴일이 됐다는 일화가 있다.
각설하고, 조계사에는 대웅전을 비롯해 극락전, 관음전 등의 건물이 있지만 대웅전 외에는 그닥 볼만한 게 없다. 조계종의 본산이라는 이름에 비해서는 매우 초라하지만 절의 위치가 서울 도심 한복판이라 확장을 끊임없이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경복궁 근정전에 맞먹을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하는 조계사 대웅전은 석가여래(석가모니불)를 모시고 있다. 양 옆으로 아미타여래(아미타불)과 약사여래를 모셔 삼존불이 있다. 많은 사찰을 다녀봤지만 불상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국내에 있는 삼존불 중에서 매우 큰 편에 속한다고 한다. 대웅전은 창덕궁 대조전 중건을 맡았던 정5품 도편수 최원식이 건축을 지휘한 것으로 알려진다. 매년 부처님 오신 날에 봉행하는 봉축 법요식이 이 건물 앞뜰에서 열린다.
8월에 가본 조계사는 연꽃 천지다. 연꽃 속에 파묻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 10년째 이어져오는 연꽃축제가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연꽃은 부처의 탄생을 알리기 위한 꽃으로 불교의 상징과도 같은 꽃이다. 원래 연꽃은 물 속에서 자라는데 조계사는 수백 개의 연꽃 화분을 경내에 배치했다. 조계사 연꽃축제는 8월말까지 열린다. 한여름 연꽃에 파묻힌 조계사는 한겨울 어떤 모습일까. 눈에 덮인 겨울 조계사도 기대해 본다.
<ansonny@review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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