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리뷰] 요즘 뜨는 신세대 '거지방' 보도에는 쿨함만 가득, 비판과 대책은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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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타임스=안병도 기자] 얼마전까지 MZ세대 청년들에게는 명품 소비로 재력이나 귀중품 등을 과시하는 플렉스, 오직 한번 뿐인 인생을 즐기자는 욜로 같은 것이었다. 주식과 코인 시장이 활황일 때는 영끌족, 벼락거지 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었고 단숨에 돈을 벌어 직장을 떠나 행복하게 사는 파이어족이란 단어도 트렌드였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가 얼마전부터 바뀌기 시작했다. 글로벌 경제 침체 속에서 특히 한국 경제가 최근 매우 안좋아지자 취업시장에서 밀려나거나 수입이 적은 알바 등 일자리에 종사하는 청년 층이 가장 먼저 그 파장을 체감하는 양상이다. 작년부터 대학생 등 MZ세대를 중심으로 ‘무지출 챌린지’가 유행했으며, 강도 높은 절약을 뜻하는 ‘짠테크(짜다+재테크)’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최근에는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의 일종인 '거지방'이 새로운 유행으로 번지고 있다. 거지방이란 메신저를 통해 서로의 소비 생활을 공유하는 오픈채팅방이다. 참여자는 한 달 쓸 예산을 정해놓고 각자 소비를 공개하며 절약을 독려하고 절약팁을 공유한다. 각 언론 보도에 따르면 오픈채팅에 '거지' 혹은 '거지방'만 검색해도 수많은 거지방이 나오고 대부분의 채팅방 인원이 꽉 차 있는 걸 볼 수 있다고 한다.
혼자 절약하면 그만이지 왜 이렇게 서로 공개하고 공개적으로 면박을 당하는 걸 원할까? 절약한다는 고통을 줄이고 서로 팁을 공유하고 응원하면서 연대감을 느끼려는 것이 이유다. 혼자서 사고 싶은 걸 참으면 나만 괴롭다. 그런데 실은 돈이 없는 많은 사람이 주위에 있고 그들이 해학적으로 격려해주는 말에 위로를 받아서 절약을 이어나갈 원동력을 마련하는 효과가 있다.
이들은 과연 익명으로 얼굴조차 보이지 않는 열린 채팅방에서 어떤 식으로 서로를 훈계하고 격려할까. 실제로 메시지 내용은 약간의 과장과 해학이 곁들여진 가운데 충분한 이유를 대지 않는 지출을 금지하는 내용이다. 때로는 소소하면서도 미래를 위한 지출은 격려와 함께 승인하는 모습도 있다.
대화 형식은 이렇다. 누군가 소비내역과 액수를 올리면 그것이 진짜 필요했냐는 뜻에서 안 쓸 수 있는 대안을 위트있게 제시한다. 물론 실현가능성이 아주 높은 대안은 아니다.
우선 여성으로 보이는 한 참여자가 "퍼스널 컬러 진단에 예약금 제외 40000원을 사용했다”고 올리자 다른 참여자가 “퍼스널 컬러 진단이 왜 필요하냐. 얼굴 옆에 색종이 대 보라”고 충고한다. 퍼스널 컬러진단은 화장을 위해 피부톤에 어울리는 색을 찾아주는 컨설팅이다.
또한 입술을 붉게 만드는 화장품인 '틴트'를 사도 되냐고 하니 "입술 꼭 물어서 빨개지게 하세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치만 시간이 지나면 소용없잖아요? 라고 반문해도 "물고 계세요!" 라고 반박한다. 정말 절박하게 절약이 필요한 '거지'라면 절박한 각오로 아끼라는 의미다.
어떤 참여자가 “오늘 지출 버블티 4000원”이라고 말하자 다른 참여자가 “버블티 너무 사치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스타벅스 마셨는데 괜찮나요?”라는 물음에는 “엎드리세요”라고 무조건 사죄하라고 말하기도 한다. 돈 버는 법을 알려달라고 하자 안 쓰는 게 모으는 거라는 조언이 따른다.
대안도 제시된다. 퇴근 후 시원한 생맥주 5000원 지출 예정이라고 하면 “물 드세요”라는 대안이 돌아온다.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고 싶다는 의견에 “회사 탕비실에서 공짜로 마시라”고 단호한 대답도 나온다. 실제로 통신사 요금제에 관한 팁이나 반려동물 치료 관련 가격대 공유 등 실생활에 유용한 다양한 팁도 있는데 알뜰폰 요금제 안내 등은 상당히 유익한 답이기도 하다.
실현 가능성 높은 대안이나 좋은 격려만 나오는 건 아니다. 통장에 9천 원 남았는데 한 달을 버틸 수 있을 것 같냐는 질문에 공원 화단에서 쑥을 캐서 먹으라는 농담섞은 대답도 올라온다. 생수 사먹는데 600원을 썼다고 하자 “오후에 비 온다는데 좀 더 기다리시지 그랬어요.”라고 나오는 대답은 슬프기까지 하다.
대안이 없는 대화는 아예 해학으로 나가기도 한다. "서울에 사는건 사치인가요"라고 묻으면 "사치입니다"라는 답이 올라온다. "아이돌 앨범 구매를 중단하는 방법 없나요"라고 한탄하면 "본인이 아이돌이 된다’"라는 해답이 제안된다. 이 밖에도 ‘광화문가서 텀블러 받았어요 공짜고 세시간 기다림’이라는 정보가 공유되거나, 전국 무료급식소 위치를 알려주기도 한다.
자격증 시험비로 2만원 가까이 썼다는 말에는 “미래를 위해 승인한다”, “합격하시길 바란다”는 등 격려와 응원이 나오는 따스한 경우도 있다. 이모티콘 돈 주고 사지 말라며, 직접 그린 이모티콘 사진을 나눠주는 경우도 있었다.
사실 이런 거지방에 진짜 '거지'만 있는 건 아니다. 그냥 드립을 즐기려는 사람도 있고 절약이 필요하지만 거지 수준은 아닌 사람도 있다. 물론 진짜 궁벽해서 절약팁과 연대감을 느끼려는 사람도 있다. 어쨌든 중요한 건 이런 거지 같은 절약법이 트렌드가 될 정도로 청년층의 소비 분위기가 안좋다는 사실이다. 정말 굶주리는 청년에게는 복지를 제공하고 소비를 권장하며 경제를 살려야 할 책임이 어느정도는 정부에 있다.
그런데 이런 거지방의 새로운 행태를 보도하는 각 언론의 태도는 기껏해야 요즘 세태가 이렇다는 풍속도에 가깝다. 기껏해야 가난이 너무 희화화 된다고 말하거나 진짜 돈이 없는 '거지'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고작이다. 코인 열풍때는 청년 층이 부자될 이런 좋은 돈 벌 기회를 왜 정부에서 막느냐며 청년을 대표해서 분노하던 논조와는 큰 차이가 있다.
또한 부동산 열풍 때도 이 좋은 걸 안하면 '벼락거지'가 된다면서 이미 거지란 표현 자체를 희화화 시키던 태도와도 매우 거리가 멀다. 사실 보도에 이어 언론의 가장 큰 역할인 사회적 비판이나 대안 제시는 전혀 없다.
중요한 건 막상 생수 사 먹을 600원을 아끼기 위해 빗물을 먹어야 한다는 농담까지 나오는 세태를 전하면서 청년층 복지 확대 라든가 공공 일자리 창출 같은 도움이 될 정책 대안 제시 하나가 없다는 점이다. 개인이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닌 고가 아파트 구입을 못하는 상황은 나라의 책임이고, 비록 농담이라지만 생수나 커피 한잔을 못 사먹는 빈곤이 트렌드가 되는 상황이 된 건 누구의 책임도 아니란 뜻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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