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유월의 광화문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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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타임스=강민철 칼럼리스트] 2023년 유월의 광화문광장은 여유롭다. 팽나무·느릅나무·콩배나무·마가목 등 크고 작은 5000주의 나무들이 따가운 뙤약볕을 차단해 꽤 넓은 그늘을 만들어주고 여기저기 놓인 빈 의자들이 한가로움을 전해준다.
2022년 8월 재개장하며 광장부지 4분의 1을 녹지로 조성한 서울 광화문광장은 1년이 지나가는 동안 나무들이 우거져 도시의 숲이 되고 있다. 세종문화회관 앞으로 나 있던 차도를 광장으로 흡수한 덕에 도보로 걸어 다니기에도 좋다. 대신에 건너편 대한민국역사박물관과 주한미국대사관 앞쪽 도로는 일방통행에서 양방 통행으로 바뀌게 되었다. 경복궁에서 바라봤을 때 오른쪽 부지가 넓어지는 바람에 원래 광장 중앙에 있던 이순신 장군 동상과 세종대왕 동상이 한쪽으로 쏠린 느낌이 들긴 하지만 크게 흠은 아닌 듯하다.
광화문광장에서 5분 거리에 직장이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광화문광장에서 열리는 다양한 문화행사를 접하게 된다. 어떤 날은 무료 서체 체험 행사에 참여해 나만의 사체인 ‘해각체’를 만들기도 했고 또 어떤 날은 친구와 함께 마우스 패드를 하나씩 공짜로 만들어 사무실에 가지고 오기도 했다.
저녁 무렵이면 작은 음악회가 열리곤 하는 데 퇴근길을 멈추고 세종문화회관 계단에 앉아 음악 공연을 듣기도 했다. 최근 주말에는 세계도시문화축제가 열려 아시아와 남미, 아프리카 등지의 여러 나라 음식과 옷, 기념품 등이 소개되곤 했다. 그런가 하면 ‘갓생 라이프, 광화문 책마당’ 행사가 열려 부모와 함께 외출을 나온 아이들이 독서삼매경에 빠져있거나 분수 터널을 오가며 물장난을 치곤 했다. 영락없는 개구쟁이들이었다.
어쩌면 이러한 즐거움은 지난 몇 년간의 고통에 대한 보상이기도 하다. 사실 일터가 광화문 근처이다 보니 시위 함성 때문에 마음이 혼란스럽고 업무에 집중하기가 어려울 때가 많았다. 사무실 책상에 앉아 일하는 데도 마치 시위대열에 끼어 있는 것 같았다. 광화문광장 시위대의 확성기에서 나오는 소리가 사무실 PC에서 나오는 소리보다 커서 옆 동료와의 대화를 교란할 정도였다. 대한민국에서 소음 통제 법규는 제대로 적용되고 있는지 의심이 드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세상을 함부로 단정할 게 아니다.
광화문광장 가까이에서 일한다는 죄 때문에 주말이면 으레 고막을 찢을 듯한 태극기 부대의 정치 선동을 들어야 했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으니 말이다. ‘평화로운’ 광화문광장이 조성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그렇다고 집회 시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인 것은 결코 아니다. 서울특별시 광화문광장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에는 ‘건전한 여가선용과 문화활동’을 이용 목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어쩌면 헌법에서 보장된 집회의 자유와 일부분 충돌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몇 년 동안 시위 소리에 고통을 받은 나로서는 지금의 광화문광장이 좋다. 나는 조용히 사색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개인 행복권을 주장할 뿐이다. 시위집회의 권리가 반드시 보장되어야 한다는 사실에는 동의하지만 그 권리가 다른 사람에게 계속해 피해를 준다면 개선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몇 년 동안 소음(?) 고통을 겪은 나로서는 광화문광장을 걸으며 즐거움을 느낀다. 교육 전문 에이전시를 운영하는 단짝인 친구와 점심을 같이 하고 느린 걸음으로 산책을 한다. 그럴 때마다 커피숍을 찾아 나는 아메리카노를, 친구는 돌체 라떼를 한잔하곤 하는 데 언제부턴가 우리는 커피숍을 찾는 횟수보다 음료를 테이크아웃을 해서 광화문광장을 찾는 일이 많아졌다. 땅의 기운이 좋아서인지, 나무의 정령이 보살펴 주어서인지, 날이 좋아서인지 마음이 편안해지고 행복한 감정이 솟는다.
광화문광장은 우리들의 노천 커피숍이 되어가고 있다. 실제로 여기저기 놓인 의자 두 개를 가져와 앉으면 웬만한 커피숍보다 낫다. 주변에 사용하지 않는 티테이블을 하나 들어다 앞에 놓으면 별다방 못지 않다. 게다가 나무로 만들어진 사각형의 테이블도 놓여 있어 야외 회의하기에도 제격이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물장난을 치는 모습을 바라보노라면 여기가 서울 도심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직장인들은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시며 오후 근무를 위한 충전을 하고 나이 지긋한 어른들은 담소를 즐긴다. 서울을 찾은 외국인들도 이곳을 좋아하는 듯싶다. 물에 발을 담그고 노트북으로 무언가 작성하는 서양 청년에게서 자유와 낭만과 젊음을 느낀다.
나는 광화문광장의 나무들이 더욱 우거지길 원한다. 인간의 어리석음을 나무가 포용해 줄 때가 많다. 도시의 빌딩은 탄소를 배출하지만 나무는 산소를 공급해준다. 나는 나무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싶다. 나의 이러한 바람을 이뤄주기라도 하듯 광화문의 나무들에게는 이름표가 달려져 있었다. 그런데 1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면서 이름표가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어 안타깝다. 서울시 당국은 나무 이름표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할 것 같다. 더욱이 나무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을 갈아입어 헷갈리기 일쑤여서 이름표는 꼭 필요하다. 여름날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고 쉬어가도록 해준 그 친구 이름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강민철 ㈜컬처플러스 대표<mckang9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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